朴孝鍾 < 서울대 교수ㆍ정치학 > 정부가 급해서인지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외국으로 생산설비를 옮기고 부자들이 지갑을 닫아놓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이 약발을 받을까. "가난은 죄가 아니다"를 내세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부자는 죄인"이라고 한 것은 분명히 '오버'한 것이다. 정부나 시민단체들이 개혁의 이름으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을 모욕해 그들이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이다. 이것은 '공직자 정신'과 다르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재능을 넘어서서 창의성과 혁신의 의미를 수반한다. 하나 '기업가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정신이다. 장인정신과 통하기도 하는 주인정신은 기업인 각자가 자기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개혁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이기적 행동이 공익정신이나 민주정신에 따라 행동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단정하지만, 그 근거가 미약하다. '내것'이 아니고 '네것'도 아닌 '우리의 것'에서 주인의식이 생길 수 있을까. 왜 농민들은 농산물 실명제를 도입하는가. 생산자의 이름을 써넣은 라면이 인기있는 것도 물건을 생산한 사람의 주인의식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집'은 깨끗한데, 왜 '우리공원'은 더러울까. '우리의 것'에서는 낭비 무책임 저급성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공공재의 문제'를 초래할 뿐이다.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기업가정신이란 기업인들로 하여금 주인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정신이다. 그 이기적 정신의 힘은 놀랍다. 국민의 혈세로 지은 공항의 이용객이 적어 국고낭비가 심각할 때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이것이 제 돈이라면 과연 이런 식으로 쓸 것인가?"하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가. 잘못 지어진 공공건물이나 필요 이상으로 호화롭게 지어진 도지사 관사를 보면서 "자기 돈이라면 그런 식으로 건물을 지었을까"하며 비판을 가한다. 이기주의에 의해 동력을 받고있는 기업인들이 민주와 공익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노력보다 혁신과 효율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우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기업가 정신이 살아 꿈틀거려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모든 것이 공론화와 투명화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개혁주의자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왜 적은 지분으로 소액주주에 불과한 기업 총수가 기업경영에 전권을 휘두르며 비민주적 행태를 보이는가 하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의식이 있었고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기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고 산업불모지에서 자동차산업과 선박산업, 반도체산업을 꽃피웠다. 만일 50%의 사외이사제나 집중투표제 강제실시로 대주주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고 '민주경영'을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또 '고객감동'이나 '고객서비스'의 개념도 시장과 기업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지 정부나 민주정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고객을 위한 정부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난리지만, 사실 이것도 기업과 기업가 정신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정부가 "물건 사시오"하고 외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물건 사시오"를 외치는 건 기업의 할 일이다. 기업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오"하고 외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세례를 받으시오"하고 외치는 것은 종교단체의 몫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기업으로부터 "자선을 베풀겠소" 혹은 "장학사업을 벌이겠소"하고 외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창조적 파괴'를 지향하는 기업경영에 대해 "민주적 결정절차를 지키시오"라고 하거나 "왜 민주적 경영을 하지 않고 독단적 경영을 하는 거요"하고 반문한다면, 그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해당되는 질문이다. 고객서비스와 기업가 정신에 입각한 기업의 본질적 역할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을 개혁의 이름으로 요구한다면, 과잉요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사회가 민주적 경영과 참여민주주의만을 강조하고 '기업가 정신'을 이기주의적 부자의식과 비민주적 전횡으로 낙인찍는 한, 경기부양책은 백약이 무효다. '기업가 정신'을 조롱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들면서 '기업가 정신'의 결실을 따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