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한 수입업협회장 shk@soyee.co.kr > 내겐 92세 되신 어머니가 계시다. 7년 전 경로당에 가시다가 목과 늑골이 골절되는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 어느 한 구석 안 아픈 곳이 없지만 항상 "나는 아무 데도 아픈 데가 없다. 이제 일어서서 걷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던 어머니.난 미련할 정도로 인내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울고,야위었지만 끈질긴 삶의 의지에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울고 웃게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삭혀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젖어들게 한다. 더욱이 수 주일 전부터는 영양제와 산소호흡기만으로 생을 유지하고 계시다.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진다. 경북 의성 김씨 문중에서 태어나 안동 권씨 3대 독자이신 아버지와 연을 맺어 7남매를 기르셨다. 내 어린시절 생활고로 끼니마저 잇기 어려웠을 때 부지런과 절약으로 '천석꾼의 부'를 이루신 할아버지. 지나가는 걸인들이 매일 찾아와 허기를 달래고,사흘 간격으로 찾아드는 할아버지의 손님이 줄을 이었을 때,늘 웃음으로 화답해 세상에 둘도 없는 며느리로 사랑받았다고 자랑하시던 어머니. "꿀이 동이 동이,소가 바리(마리)바리,곳간엔 곡식이 가득가득,방어 고기는 얼마나 맛있었고…." 나와 마주 앉으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그 오래된 기억 속에서 당신의 뜨거웠던 젊은 시절,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펼쳐 보이셨던 어머니! 밥이 보약이라시며 내가 잠시 한눈을 팔면 어느새 밥그릇 위에 밥을 수북히 얹어 놓으셔서 투정도 많이 부렸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이제 오나,오다(수출주문)는 많이 들어오나"하시던 말씀이 내겐 큰 힘이 되었다. 병상에 조용히 누워계신 아름답고 가엾은 어머니를 본다. 왜 어머님께서 의식이 있던 그 많은 시간에,어머님의 자상하신 얘기에 좀 더 귀 기울이며 마주 앉아 대화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을까,좀 더 잘 해드리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운 마음 끝이 없다. 이젠 시간만이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께서 짧지만 짧지 않았던,또 길지만 길지 않았던 여정의 끝에 서서 행복했던 기억만을 간직하시길 바랄뿐이다. 가끔 친인척들이 어머님 문병을 와서 "병원에 계실 때 돌아가시도록 하지.지금 자네도 고생하고 어머님도 고생하시지 않느냐"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내겐 정신이 오락가락하셔도 이 세상에 아직 어머님이 계신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행복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