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갑 아경산업 대표 akyung@kornet.net > 20여년간 회사출장관계로 비행기를 자주 타다 보니,매번 옆자리에 앉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책으로 엮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사회 지도층에 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88올림픽 직후 도쿄발 모스크바행 기내에서 자신의 인생역정과 성공담을 얘기해주시던 조선내화 이훈동 회장과의 만남과 뉴욕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강신옥 변호사의 김재규에 대한 변호를 묵묵히 듣던 일.또 언젠가 홍콩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언론인 김학준씨는 이코노미석에서 줄곧 흐트러짐 없이 독서를 하는 모습 등은 좋은 기억으로 다가온다. 반면 옆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 눈살을 찌푸리게 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탑승할 땐 으스대고 기내에선 거드름 피우고 내릴 때에는 개선장군처럼 굉음을 내는 사람들이다. 눈총을 맞게 되면 지위와 건강을 둘다 잃는다는 것은 상식인데도 소시민들이 보내는 눈총을 무시하는 저명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아직도 많다. 최근 옆자리에서 감동을 받은 만남은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청년 장준하' 공연을 관람하면서였다. 이 때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층에서 봤다는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이튿날 조간신문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일반 관객들에게 조금도 불편을 주지 않고 대통령과 함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나에겐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날 '장준하기념사업회'의 회장이 마침 열린우리당 의장이 된 관계로 극장 입구에서의 분위기는 한층 고무된 듯했으나 청년 장준하의 나라사랑에 눈시울을 적신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가장 사량(思量)하여야 할 이 의장의 한나라당을 향한 첫 발언이 국민 모두의 희망인 상생정치를 외면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키신저를 일컬어 미국지식인 사이에선 정권에 따라 신념이 오간다하여 회전문맨(revolving door man)이라고 불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서 장준하 선생님이 즐겨 찾았다는 명동을 걸어 보았다. 1975년 등산 중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뒤 선생님의 술값 관계로 명동의 술집 '거상'을 방문한 지인들에게 술집 여주인이 했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외상술값 때문에 우리집에 오지 마라.오려거든 선생님과 같이 오라." 진실로 인간적이고 가슴 뭉클한 이런 얘기가 우리의 정치마당에는 왜 오지 않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