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 업체에 원단을 납품하는 직물업체 인탑통상의 유득길 사장(43)은 지난해 2월 원사업체인 (주)효성 마케팅팀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효성이 은성분을 넣어 개발한 기능성 원사 '매직실버'를 와이셔츠 원단에 한번 사용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제품 개발과 마케팅까지 전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말에 유 사장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을 만들어 놓고 '살 사람은 사라'던 과거 화섬업체의 태도와는 1백80도 달라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은 유 사장은 같은달 말 효성 폴리에스터 마케팅팀 이종기 과장 등과 서울 역삼동 인탑통상 사무실에서 머리를 맞댔다. 기능성 원사를 와이셔츠에 적용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매직실버를 몇% 혼용할지,어느 와이셔츠 업체를 먼저 공략할지,브랜드와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세울지 챙겨야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와이셔츠 원단을 개발하는데 꼬박 6개월이 걸렸습니다.샘플을 만들 땐 효성측 도움을 1백% 받았죠.개발한 뒤엔 효성 직원들과 함께 '포닥터(fordoctor)'라는 브랜드를 생각해냈습니다.균을 제거하는 기능을 갖춘 은섬유의 특성을 이용해 균에 항상 노출돼 있는 의사들을 공략하자는 의미였습니다."(유득길 사장) 원단을 들고 국내 1위 와이셔츠 업체인 닥스(DAKS)를 찾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정말 균이 제거되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게 닥스측의 반응이었다. 대기업인 효성의 역할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단을 경기도 안양의 효성 R&D(연구개발)센터로 보내 제균성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효성에서 '포닥터' 와이셔츠를 사내판매하면서 직원들의 반응도 살폈죠.효성이 인탑통상의 제품 보증에 나섰던 셈입니다."(이종기 과장) 효성은 한국소비과학연구센터(FITI)에도 제품을 보내 항균위생(SF) 인증도 받았다. 비용이 많이 들어 영세 원단업체 혼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제품에 공신력을 불어넣은 후 2차 시도에 나섰다. 닥스측과의 2차 모임에는 효성 마케팅팀도 가세했다. 섬유공학을 전공한 효성 직원들의 전문적인 설명과 함께 인증서를 보여주니 닥스측의 반응이 달라졌다. 정말 균이 제거된다면 해볼 만하다는 의견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가을 포닥터를 시장에 선보였죠.일반 와이셔츠 가격의 두배인 9만원에 내놨는 데도 결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보통 1년에 35만장 분량의 원단을 만들어 왔는데 지난해에는 50만장 분량을 찍었죠.매출도 연간 26억원에서 36억원으로 급증했고요.올 봄에는 닥스 뿐 아니라 예작(藝作),갤럭시(GALAXY),레노마(renoma) 등 주요 와이셔츠 업체들로 수요처를 늘렸습니다."(유 사장) 효성은 각종 패션쇼와 이벤트,전시회 등이 열릴 때 마다 '포닥터'를 소비자들에게 대신 홍보해줬다. 오는 21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텍스월드 전시회에 포닥터를 갖고가 해외 수출길까지 뚫어주기로 했다. 조봉규 효성 폴리에스터 사업부 사장은 "아무리 중간재라도 만들어 놓으면 팔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영세한 구매사들이 효과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