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가 개회하던 날(1일)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하나도 민생,둘도 셋도 민생만을 챙길 것"이라면서 "절망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그 어떤 정책적 허영도,입법적 호사도,대여 교섭의 오기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전 대변인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험담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릇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적합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말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의 평가를 내릴 생각은 없다.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여야 간이나 정부·정치권이 긴밀한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제몫 챙기기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최근 사석에서 선거관련법을 고쳐 국회의원의 '활동공간'을 넓히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 의장은 "국회의원들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현행 후원금제도의 문제점 등을 꼽았다. 무소속인 김 의장이 '국회의원들이 활동비를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만한 발언이다. 한 국회의원은 평일에 골프를 치러 갔다가 캐디로부터 "국회의원 맞지요? 경제도 안 좋은데 평일에 골프 쳐도 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 캐디가 '정치인'을 향해 속내를 드러냈겠는가. 기대 속에 열린 17대 첫 정기국회의 모습은 이렇게 유쾌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경제현안을 놓고 여야 지도부가 머리를 맞댄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며칠간의 정기국회 모습을 떠올려본다. 과거사 규명 논란과 보수·개혁 논쟁,386의 반란,국가보안법 폐지 갈등,대권경쟁 등등… 이런 것들이 아닌가 싶다. 정기국회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첫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는 느낌이다. 끝까지 이 모습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부 정치인들 속에서 과거의 '못된 관행'이 되살아나고 있다. 유권자들로부터 그토록 비난받던 구태정치로 돌아갈 심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이 경제를 전혀 챙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소득세율 인하와 재정지출 확대를 골자로 하는 경제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의 실효성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줄곧 "위기가 아니다"라던 태도를 바꾼 것만도 평가받을 만하다. 열린우리당이 뒤늦게나마 변화를 보이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인 사회 전반에 퍼진 반기업 정서와 부자에 대한 반감,반시장경제적인 분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기국회에 임하는 여권의 어느 곳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각종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거세나 구체적인 대안제시는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당이 과거사 규명과 국가보안법 폐지문제,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놓고 여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사이에 정치권의 관심은 경제에서 멀어져 간다. 한나라당만이라도 국가 아젠다(국정의제)를 경제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바란다. 여야는 '국민들이 가려워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정기국회 초반의 초점을 다른 곳에 맞추고 있다. 이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을 차례다. 더 이상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정기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 김영근 정치부장 ygkim@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