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가 수십개,'별'도 여러개. 지난 4일 서울 구로동의 미주직업전문학교 교실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50∼60대 예비역 장교 30여명이 디지털 회로에 대해 배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국의 산하를 지키는 데 젊음을 바쳤던 전사들이 산업전사로 변신하기 위해 IT 기술로 재무장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과거를 잊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때 육군 연대장을 지내며 수천명의 장병을 호령하던 권혁중씨(58). 2000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PC방을 경영하기도 했으나 한동안 쉬던 권씨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를 찾았다. 이 학교 학생들은 다른 재취업기관과 조금 다르다. 전체 4백여명 중 80%가 예비역 장교다. 이들이 이 곳을 찾은 이유는 '예비역 취업에는 최고'라는 입소문 때문.지난해 1백10명의 졸업생을 배출,75명을 취업시켰다. 올해는 불황탓인지 취업률 57% 수준. "사단장 연대장 시절은 잊고 공장라인에서 일할 각오를 하면 취업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을 기업에 소개하면 취업이 안될 수 없죠." 김충식 이사장(52)의 말이다. 그는 수도권 5만여개 기업에 매달 소개자료를 보내고 있으며 지난 2년간 3백30개 기업 사장과 만나 직접 인력을 소개했다. 통신비만 1억원을 넘게 썼다. 그는 '예비역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본인.지난 85년 중령으로 예편한 뒤 건설업 무역업 등 닥치는 대로 사업을 하며 돈을 꽤 모았다. 지난 98년 학원을 인수하고 1백억원을 투자,이 학교를 설립했다. "처음엔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기술교육을 기피하고 취업해도 쉽게 그만두더군요." 김 이사장은 '고생해본 사람이 적합하다'고 판단,지난해 군 출신을 받아봤다. "처음엔 연대장,대대장하던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겠느냐는 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더군요." 특히 기업을 경영하던 김 이사장에겐 인력시장의 틈새가 보였다. 많은 중소기업이 본사에서 연구와 마케팅을,생산은 중국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이를 이어줄 허리부분,즉 중간관리는 취약했다. 여기엔 관리능력을 갖춘 예비역이 안성맞춤이었다. 예비역은 나이가 많고 IT와는 거리가 멀지만 열심히 배우고 성실했다. 군인연금을 받는 이들은 월급도 까다롭게 따지지 않았다. 대령 출신인 명철 KOHPO 부사장(50)처럼 관리능력을 인정받아 단기에 경영자가 된 경우도 있다. 김 이사장은 "젊은 인력은 줄고 노령자가 일을 해야하는 사회가 오고 있다"며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산업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노동부 지원을 받아 전기,전자,통신네트워크 교육과정(6개월∼1년·무료)을 주로 가르친다. (02)866-3202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