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 파생금융상품 非理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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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이 넘는 공공자금을 이용해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을 제멋대로 거래하면서 수백억원대의 뒷돈을 주고 받은 공기업 임직원과 중개업자,외국계은행임원 등 10명이 검찰에 적발돼 5일 무더기로 구속기소됐다.
이번 사건은 고도의 금융공학 지식을 활용한 '화이트칼라 범죄'의 전형으로 일부 전문지식인들의 모럴해저드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고위험 금융거래가 한 두사람에 의해 아무런 제약없이 체결되는 등 공적자금에 대한 부실한 내부통제시스템이 여실히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수백억원 '돈잔치'=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주철현 부장검사)는 파생금융상품 거래 편의를 봐주기로 하고 거액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 등)로 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KTX) 과장 정모씨(38) 등 관련자 7명을 구속기소한 데 이어 재무처장(1급) 양모씨(49) 등 KTX 임직원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외국계 모 은행 황모 상무(48·구속)는 평소 알고 지내던 컨설팅 업체 K사 대표 정모씨(43·구속)를 통해 남모씨(33) 등 컨설팅업자 3명(모두 구속)과 농협중앙회 신모 차장(38·구속)을 규합,KTX-농협-외국계 은행을 연결하는 통화스왑옵션 등의 계약을 체결했다. KTX가 환율위험 분산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계약을 성사시키면 수수료 자문료 등 거액을 벌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작년 4월부터 올 3월까지 KTX와 외국계 은행 간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농협이 신용공여수수료 등으로 2백여억원을 챙겼다"며 "이 중 1백5억원가량이 알선 대가로 남씨와 K사 대표 정씨 및 황씨 등에게 적정 비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남씨는 사전 약속대로 5억7천여만원을 수고비 명목으로 농협 신 차장에게 넘겼고 황씨는 거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양 처장 등 KTX 관계자 4명에게 2천만∼2억원씩을 건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잿밥에 관심=문제는 이 통화스왑옵션 계약이 환율변동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체결한 다른 계약들과는 달리 위험분산의 기능이 빠진 '투기적 게임' 형태로 불필요하게 설계됐다는 점이다.
특히 10억달러(1조1천여억원)라는 외자를 들여온 KTX가 만기반환 전인 10년 간 환율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KTX가 관리해야 하는 위험과 무관한 엔·달러 환율(1달러당 엔화교환비율)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10년 후 달러가치 상승이나 이자율 하락에 대비하기보다는 엔·달러 가치에 연동되는 구조의 계약으로 다소 투기적인 거래를 감행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KTX가 위험한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적극 끼어들면서 사실상 의사결정을 직원 한사람에게 맡겨놓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검찰은 "명목원금 1조원이 넘는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KTX 과장 1명이 전담하고 있었고,농협은 차장 1명이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