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요즘처럼 코너에 몰린 적은 없다. 노동계 카운터파트인 재계는 물론 친노(親勞)성향의 노무현정권,'노동해방'에 앞장섰던 진보노동단체까지도 우리나라의 폭력적 노동운동에 일제히 비판을 가하고 있다. 재야노동운동가 출신으로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연구소 수석연구원을 맡고 있는 박승옥씨는 '당대비평' 가을호를 통해 한국의 노동운동을 '왕자병환자'에 비유했다. 구로노동상담소 소장,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대표를 지내면서 '골수' 노동운동전문가로 활동해온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옹호세력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갇혀있다"면서 "이제 생디칼리즘적(급진적)인 폭력 노동운동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아무런 방향도,전략도,대안도 없이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는데 대한 자아비판인 셈이다. 과격노동운동에 대한 내부 지적은 이전에도 여러차례 있었다. 전태일의 여동생인 참여성노동복지터 전순옥 소장,권혜자 전 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등을 비롯 많은 진보노동단체 관계자가 대기업 노조의 집단이기주의와 노동계내 파벌싸움을 폐해로 지적했다. 고임금에 철밥통인 대기업노동자들이 비정규직,영세중소기업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은 나몰라라 한채 조직이기주의와 내몫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한참 잘못됐다는 것이다. 대기업노조의 독점적 노동운동행태는 저임을 받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파업은 생산차질과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를 하청기업으로 떠넘겨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영세중소업체 근로자들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아직도 투쟁방식을 둘러싼 파벌싸움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강경파는 투쟁을 최선의 방법으로 여기며 대화를 내세우는 온건파와 이전투구를 벌이는 형국이다. 세계 노동현장은 급속히 변하고 있다. 과격 노동운동은 선진국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노조의 힘이 막강한 유럽에서도 사회적 힘의 균형이 사용자쪽으로 이동중이다. 우리 노동계는 안팎에서 공격을 받으며 위기에 처해 있다. 투쟁만을 고집할 경우 설땅은 더욱 없어질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