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이요? 한국에서는 3차산업이 아니라 1차산업이죠." A증권사 리서치헤드 J씨의 말이다. 그는 외국사에서 일하다 얼마전 국내사에 스카우트된 잘나가는 증권맨이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쌓아온 온갖 노하우와 분석기법을 동원해 만든 시장 분석자료의 값은 공짜다. 정보의 질에 따라 값을 받는 게 규정위반이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사처럼 정보수수료를 차등화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부가가치를 창출해도 팔지 못하니 결국 1차산업일 수밖에 없다"는게 그의 푸념이다. 실제 증권·투신업은 지나친 규제와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의 모든 감독규정이 네거티브(negative)가 아니라 포지티브(positive)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얘기다. 실례로 증권사는 환율과 연계된 상품을 만들수 없다. 증권사는 유가증권만 취급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서다. 증권사가 알아서 관리해주는 일임형 랩의 경우 수수료율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언제나 일정하다. 운용을 잘해서 높은 수익을 내든,그렇지 못하든 정해진 수수료만 받아야 한다. 정부의 규제는 결국 증권사를 고객의 자산을 불려주는 금융회사가 아니라 주식을 거래해주는 '주식복덕방'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구조조정이 부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증권사는 작년말 현재 44개사,투신사는 32개사다. 외환위기 이전보다 각각 8개사와 2개사가 오히려 늘었다. 반면 은행은 막대한 공적자금이 유입돼 33개에서 19개로 줄었다. 똑 같은 상품에다 동일한 수수료를 받는 증권·투신이 대폭 늘어나는 것을 방치하면서 자율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것은 버티기시합을 하라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은행과의 싸움은 더욱 버겁다. 정부는 은행을 덩치만 키운 게 아니라 종합금융회사로 만들어 놨다. 증권사 고유영역이던 수익증권도 팔고,보험상품도 취급하는 등 못하는 게없다. 반면 증권·투신업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편파 판정을 하고 있다. 실례로 비과세상품을 은행엔 허용하면서 증권투신상품에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증권사가 파는 ELS(주가연계증권)나 은행이 파는 ELD(주가연동예금)는 똑같은 내용의 상품이지만 금융감독원에 내는 부채분담금(감독분담금)은 은행의 14배에 달한다. 증권사 고객예탁금을 증권금융에 무조건 예치토록 해놓고도 예금보험공사에 내야하는 예금보험료도 은행의 2배나 거둬간다. 똑 같은 상품인데도 MMDA(수시입출금예금)는 은행에서 판매를 독점하고,MMF(머니 마켓 펀드)는 증권은 물론 보험과 은행에서도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게임의 룰이 불공정할 뿐 아니라 심판마저 편파판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H증권 B대표는 "정부의 금융정책은 한마디로 은행 키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증권·투신에는 창의성을 발휘할 터전조차 주지않는 등 서자취급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적어도 한국의 월스트리트인 여의도에서는 동북아 금융허브란 구호가 공허한 단어일 뿐이라는게 그의 지적이다. 조주현·장진모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