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 타당성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당 소속에 상관없이 개인적인 소신에 따라 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당 차원에서 공식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디노미네이션이 새로운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민주당 김효석 정책위의장은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행 화폐단위가 도입된 후 30여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1백배 이상 커졌고 10만원권 수표 발행비용만 연간 6천억원 이상에 달한다"며 "고액화폐 도입과 동시에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이계안 제3정조위원장도 사견임을 전제로 "경제규모의 성장에 걸맞게 화폐개혁이 필요하다"며 "디노미네이션의 공론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우제창 의원은 "디노미네이션 단행을 위한 화폐단위 변경 법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당내외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임태희 이혜훈 의원 등도 "30년 이상 사용해온 화폐단위를 경제규모가 월등히 커진 지금에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열린우리당 김진표 의원은 "디노미네이션을 하면 당장 서민들의 생필품 가격이 뛰어오를 것이 뻔하다"며 "필요성을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현 경제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아니다"고 반대했다. 같은 당 안병엽 제4정조위원장도 "예컨대 10%의 디노미네이션을 하면 실물가격이 그만큼 떨어져야 하는데 7∼8%만 떨어지고 나머지는 물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며 "현 경제상황에선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금리가 낮고 부동자금 규모가 큰 상황에서 디노미네이션을 섣불리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특히 정치권이 이 문제를 먼저 꺼내는 것은 경제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계했다. 박해영·양준영·최명진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