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논쟁] 찬 "불가피" - 반 "부작용 만만찮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수십년간 누적된 물가상승으로 인해 크게 불어난 원화 단위를 화폐개혁을 통해 끌어내리자는 '디노미네이션(donomination.화폐단위 절하)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등이 10만원권 등 고액권 화폐발행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한 가운데 일부 의원들은 아예 1천원이나 1백원을 1원으로 변경하는 디노미네이션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민간경제계는 이 같은 정치권 논의에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뜀박질을 지속하고 있는 터에 섣불리 화폐제도를 개혁할 경우 인플레 유발과 사회 불안에 따른 자본 도피 가능성 등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치권발(發) 디노미네이션론
지난 2일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등 여야 의원 11명이 10만원권과 5만원권 발행을 골자로 하는 화폐기본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남 의원은 "경제규모가 확대된 만큼 고액권 발행이 필요하다"며 "그 동안 고액권 발행의 부작용으로 거론됐던 뇌물의 거액화 문제는 불법적인 정치자금이 거의 사라지면서 그 가능성이 줄었다"고 고액권 발행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부 의원들은 "그럴 바에는 디노미네이션을 하는 게 낫다"며 본격적인 화폐개혁을 거론하고 있다.
이계안 열린우리당 제3정조위원장은 "야당이 이미 법안을 제출한 상황이기 때문에 화폐개혁은 공론화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됐다"며 "사견이지만 고액권 발행에 6천억원이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도 7일 기자회견을 열고 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화폐단위 변경을 통해 원화의 위상이 제고되는 효과가 있고 단위가 줄어들어 편의성 향상 등을 꾀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시기상조'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올 초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디노미네이션 검토론을 제기했을 때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바쁜데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었다"고 상기시키며 "(디노미네이션 문제는)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검토해본 적이 없다"고 논의 자체를 일축했다.
한은도 마찬가지다.
박승 총재는 지난 5월 "한은이 준비가 안된 상태이며 디노미네이션은 중장기과제"라고 말했다.
현 경제상황이 화폐개혁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물가상승,화폐 발행에 따르는 비용 등을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그러나 고액권 발행과 디노미네이션,위조지폐 방지책을 한데 묶어 종합적인 화폐개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다만 '정치적 논의 제기'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화폐개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치밀한 대책도 없이 고액권 발행과 디노미네이션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은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연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연구소도 "아직 때가 아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지금처럼 경기가 어렵고 물가불안까지 중첩된 상황에서는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우리나라 화폐단위가 너무 낮아 화폐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달러 대비 환율도 경제규모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당장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만큼 시급한 과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