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하루만에 '없던일로'] 열린우리, 비판여론 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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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화폐 액면절하(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공식 방침을 정함에 따라 '화폐제도 개혁' 논쟁은 고액권 발행 여부로 가닥을 잡게 됐다.
경기 침체 속 고물가가 위험 수위에 이른 상황에서 액면 절하 문제를 논의하는 자체가 사회 혼란을 부추겨 자본 해외 탈출을 야기할 수 있고,물가불안 심리를 한층 자극할 것이라는 여론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원화 액면의 '인플레'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론돼온 고액권 발행문제는 본격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등이 발의한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고,여론도 고액권 발행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교통정리' 서두르는 여권
열린우리당은 박영선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를 통해 "화폐액면 절하 문제를 당 차원에서 더 이상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며 '공'을 정부와 한국은행에 넘겼다.
여당은 그러나 고액권 발행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논의의 여지를 열어뒀다.
재정경제부는 이와 관련,이날 "액면 절하와 고액권 발행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도출한 바 없다"는 보도자료를 내놓았지만 내부적으론 10만원권 수표를 대체할 고액권 발행 방안은 검토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여권이 '액면 절하 불가,고액권 발행 가능'으로 화폐제도 개편의 방향을 좁혀 잡은 것은 국가보안법 개폐와 과거사 정리,행정수도 이전 등 가뜩이나 넓혀져온 '전선(戰線)'이 화폐개혁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고액권 발행 문제는 힘받을 듯
정부 주무부처인 재경부는 고액권 발행은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그 동안 여러 차례 비쳤다.
김광림 재경부 차관은 올해 초 라디오 방송에서 "화폐단위를 낮추는 것은 명분에 비해 실익이 적어 반대하지만 고액권 또는 위폐 방지를 위한 신권 발행에는 찬성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액권 발행도 예상되는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검은 거래 관행'이 뿌리 뽑히지 않은 상황에서 뇌물 액수가 커지고 탈세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단적인 예다.
하지만 1973년 등장한 1만원짜리 지폐가 31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액 지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을 감안하면 고액권 발행은 화폐단위를 현실화한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이미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현금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고액권 발행을 통해 수표발행 비용을 절감하고 거래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폐 종류도 한국은 3개로 미국(6) 영국(4) 유로(7) 멕시코(6) 등에 비해 훨씬 적다.
한은은 이미 고액권 발행시 어떤 인물을 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여론조사 등 준비작업을 마무리한 상태다.
◆재계도 "고액권 발행해야"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날 고액권 발행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대한상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제 수준과 최고액권 규모를 고려할 때 한국에서 최고액권은 현재보다 10.7배 정도 높아야 한다며 10만원권 지폐 발행론을 거들었다.
특히 중소상인들이 불경기 등으로 인해 상거래에서 수표 취급을 꺼리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호소했다.
대한상의는 고액권 발행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는 "부정부패에 악용하고자 한다면 고액권 말고도 무기명 채권,달러화 등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뇌물 등을 근거로 고액권 발행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구학·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 '리디노미네이션'이 맞는 말 >
한국은행은 화폐액면 절하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돼온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은 화폐 채권 주식 등의 액면금액 자체를 뜻하며,액면 절하를 가리키는 것은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