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 시인 > 도도새는 인도양 모리티우스섬에서 살다가 멸종한 비둘기과의 새이다. 1507년 포르투갈 사람이 처음 발견했는데 18세기 초에 멸종한 것으로 학계에 알려지고 있다. 멸종 당시 몸무게 25kg 몸길이 75cm의 오동통한 새이다. 적도 부근의 따뜻한 기후와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몸집을 키우고 살찌우며 날기를 포기한 새.날기를 포기함으로써 날개가 퇴화해 길짐승이 됐던 새.18세기 초에 멸종한 새.조류도감에서만 존재하는 새. 날개와 난다는 것,생각하면 새에게 있어서 난다는 것은 본질이며 자기 정체성이다. 새에게서 난다는 것은 최고의 생존수단이며 최소한의 자기방어수단이기도 하다. 도도새는 그 최소한의 자기방어수단을 포기함으로써 조용히 멸종했다. 아니 풍요로움과 편리함에 젖어 날짐승으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림으로써 멸종한 것이다. 새에게서나 사람에게서나 본질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질을 잃어버린 것은 결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가 저 도도새의 비극을 따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부름과 편안함만이 최선은 아닐텐데 그것을 지향(指向)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사회적 이슈(issue)들이 자주 등장하고 이것들이 정치권을 한바퀴 돌고나면 사회적 지향점으로 정책이 개진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일보다 우선 인기 있는 발언과 제재들에 정치권부터 학자들까지 설탕물에 파리 달려들 듯 떼거지로 몰려든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빼앗기네 어쩌네 자못 심각하다. 그 나라의 역사는 그 나라의 정신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팽개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제 아무리 왜곡하고자 해도 우리가 지키고 있다면 그 것은 결코 그들의 뜻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지켰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국수주의라 생각하고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빼는 나라.역사를 고급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제외시키는 나라.대학입학시험에서조차 자국의 역사를 소외시키는 나라.이런 나라에서의 역사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세계사만 가르치면 다 세계화가 되는지.왜 이제 와서 호들갑인가? 우리는 참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소홀했다. 벚꽃놀이는 있어도 무궁화놀이는 없는 나라,설날은 양력으로 음력으로 왔다 갔다 해도 석탄절과 성탄절만은 신성한 믿음처럼 지켜지는 나라,선거에 영향력이 제일 약하다고 한글날이 가장 먼저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나라,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21세기에는 인터넷이란 괴물의 영향력으로 문자가 없는 세계의 많은 민족어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글자인 우리 한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 나라의 말과 글이 그 나라의 정신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거리에 나서면 온통 보이는 건 외국어 간판인데,과자든 옷이든 이름 붙은 것은 모두 외국어 상표인데,이젠 한술 더 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이야기조차 슬금슬금 나온다. 통일을 꿈꾸면서 남북간의 언어차이를 극복할 어떤 대안조차 마련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다시 도도새 이야기로 돌아가자.도도새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멸종했는가? 먹을 것이 부족해 멸종했는가? 우리와 저 도도새는 무엇이 다른가? 정치 지도자부터 초등학생까지 우리 모두 우리는 누구인지 이제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편리를 위해 청바지를 입고 햄버거를 먹는다. 필요에 의해 외국어도 배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본질과 우리의 정체성을 우선할 수는 없다. 우리의 눈은 어디로 향해 있어야 할 것인가? 세계화란 우리의 것을 세계적인 표준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 않는가? 저 태권도(跆拳道)처럼,김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