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위기가 재정적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제임스 루니 마켓포스 사장)."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교수).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비즈니스 주최로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의 진로"국제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경제주체들의 자신감 상실"과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정부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시장논리보다 정치논리를 중시할수록 혼란이 가중되고,결국 기업과 가계의 자신감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에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경제학자로 꼽히는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교수(경제학),산업자원부와 서울시에서 투자자문위원을 역임했던 제임스 루니 마켓포스 사장,그리고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경제학)가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자신감 상실이 위기초래 요인 참석자들은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든 원인으로 '경제주체들의 자신감 상실'을 꼽았다. 후카가와 교수는 이날 첫번째 주제발표에서 "한국의 경제상황이 불황인 것은 맞지만 위기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은 전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루니 사장은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인들과 소비자들이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해외이전과 가계부채 급증,고용사정 악화 등이 소비심리를 극도로 위축시켰고,이로 인해 내수침체가 더욱 장기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심리적인 위기감이 금융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세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전주성 교수는 "자신감 상실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라며 "설비투자 위축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경기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데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전투적 노조로 인한 노동비용 증가와 예측 불가능한 조세행정 시스템,그리고 반기업 정서 등도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정책혼란 지속땐 장기불황 가능성 참석자들은 한국 경제의 잠재력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줬으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능력에 대해서는 인색한 평가를 내놨다.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상실한 것도 정부의 정책실패 때문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위기감은 정치와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며 "(정부가)예측불가능한 행동을 많이할수록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처럼 정치가 직접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쳐서는 곤란하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의 경제운용 능력에 대해 "1백점 만점에 30점 정도로 낙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루니 사장도 "지도력 부재가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거들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앞으로 20년간 7∼8%정도의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같은 성장률은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극복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전 교수는 "넓은 시각에서 볼때 한국 경제가 당면한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해결의 열쇠도 정부가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