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회가 10일 정례회의를 열어 회계기준과 감독규정을 위반한 김정태 국민은행장에 대해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또 윤종규 부행장(개인금융 담당,당시 재무담당)에 대해서도 '3개월 감봉' 조치를 내렸으며 도널드 매킨지 부행장(리스크관리 담당)과 이성남 전 상근감사(현 금융통화위원)에 대해선 각각 '주의적 경고'와 '주의적 경고 상당'의 제재를 취했다. 이로써 국민은행의 회계기준 위반 파문은 일단락됐다. 금융계에서는 금감원의 이번 조치를 '정책적 메시지',즉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강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환위기 후 은행들을 대형화 민영화 외국계화해 놓고 보니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너무 약화됐다고 판단,다시 고삐를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시중은행 기강확립 의지 국민은행 회계기준 위반건은 사안에 따라서 경징계 처리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게 회계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감독당국이 중징계 조치를 내린 것엔 '정책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금융계는 분석하고 있다. 은행들의 지나친 이기주의적 경영 행태에 대해 감독당국이 견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주주이익과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정부의 시장 안정대책에 번번이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부분 시중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형화·우량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하이닉스반도체 협조융자,SK글로벌 사태,카드사 위기 등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공조가 필요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각 은행들은 제 목소리만 높였다. 그 선두에는 항상 김 행장이 있었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김 행장에 대한 중징계는 은행의 공적 기능을 무시하고 이기주의에 치우친 은행을 길들이기 위한 일종의 시범케이스"라고 분석했다. 전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영(令)을 바로세우겠다'는 감독당국의 의지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금감원의 회계 감사가 '김정태 죽이기'를 위한 표적 감사였다는 관측도 이래서 나온다. ◆금융정책 기조변화의 신호탄인가 감독당국의 이번 조치가 은행에 대한 단순한 견제 차원을 뛰어넘어 정부 금융정책에 대한 기조 변화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관치금융의 악명을 떨쳐내기 위해 정부가 서둘러 은행을 민영화하고 시장원리를 존중해왔지만 이제는 그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1998년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미국 금융당국의 주문 아래 각 시중은행이 일사천리로 협조 융자에 나서 금융 위기를 차단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비하면 지난해 LG카드 사태에서 보듯 국내 시중은행들은 지나친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시장원리를 존중하되 전체 금융산업의 안정과 균형 발전을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정책기조 변화에 대해서는 '신관치'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금감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떤 유권해석을 내리느냐에 따라 은행장이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금감원은 여전히 은행의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은 이날 "카드 위기에 대해 정부측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김 행장을 몰아낸 꼴"이라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