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더운 날,목마른 여우가 정원에서 잘 익은 포도를 발견했다. 여우는 "나는 운도 좋아! 잘 익은 포도는 오늘처럼 더운 날엔 시원한 물보다 훨씬 나을 걸"하며 정원으로 몰래 들어갔다. 불행히도 포도송이는 여우에겐 너무 높았다. 여우는 어떻게든 포도를 따 보려고 열심히 뛰다 지쳐버렸다. 여우는 돌아서며 한마디 내뱉었다. "어차피 신 포도인데 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다. 뭔가를 얻으려다 실패했을 때,애초부터 자신이 그것을 원치 않았던 것처럼 가장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비유다. 여기에서 실패한 것은 바로 '신 포도'(sour grapes)다. 버스를 놓치고서 "어차피 만원버스인데 뭘…",학급 반장 선거에 떨어지고선 "반장 일을 할 시간도 없는데 뭘…"하며 넘겨버렸던 기억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성싶다. 지난 주만 해도 당장 단행할 것 같던 화폐단위 절하는 정치인들에게 '신 포도'였나 보다. "경제가 어려운데 시행해봐야 혼란만 더할 텐데 뭘…." 마찬가지로 여든 야든 상대방이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수구논리인데 뭘…","사이비 개혁인데 뭘…"로 끝이다.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살벌한 욕설과 함께 '노빠' '박빠'로 몰아세우는 인터넷 토론방과 뭐가 다른지. 창문 열어놓고 잤다간 감기 들기 십상인 가을이다. 이번 주에는 정신 차리고 챙겨볼 일정들이 많다. 우선 국민경제자문회의(15일)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논의한다. 내년부터 토지분 종합토지세와 건물분 재산세를 합쳐 '주택세'로 과세한다는데 내가 낼 세금은 줄까 늘까? 17년 된 '뜨거운 감자'인 원전센터 후보지 예비신청이 15일 마감된다. 아울러 쌀 협상의 최대 난적인 중국과 4차 협상(14일)을 갖는다. 정부 속내는 쌀시장을 지키려고 각국 통상요구를 다 들어주느니 차라리 고율관세를 붙여 쌀 수입을 허용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인데 격앙된 농민들 설득이 걱정이다. 회계위반 징계에 이은 국민은행 이사회(13일)와 윤증현 금감위원장 조찬강연(16일)에선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다. 재계에선 대우종합기계 입찰(14일)을 주목하고 있다. 경제지표로는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16일)이 있다. 산업생산 서비스업활동 소비심리 모두 하강세인데 일자리인들 나아졌을까 싶다.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