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의 별'이라는 제목의 연극이 있다. 국민극단이 공연 중이며 극본도 주역도 연출도 모두 김정태라는 스타 연극인이 맡아왔다. 이 연극이 주역과 연출을 교체하게 됐다. 당국의 검열에 걸렸기 때문이다. 연극제작비 회계처리에 문제점이 발견됐고 최근의 흥행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는 게 검열당국의 설명이다. 제작비 회계를 맡았던 스태프도 함께 중징계를 받았다. 다행히 극본 수정 요구는 없었다. 연극은 계속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셈이다. 이제 문제는 새로운 주연배우와 연출자를 구하는 일이다. 벌써부터 자기가 맡아서 한 번 해 보겠다는 희망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소문이다. 때마침 검열당국의 한 고위 인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한동안 주연배우와 연출자를 외부 극단에서 발탁하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으니 외부발탁만이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요지였다. 또 "서열에 의해 주역과 연출을 선정하는 것도 극단을 노쇠화시킬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이 훈수는 국민극단을 염두에 두고 한 얘기로 들린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야말로 뜬금 없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다른 극단 중에서는 주역과 연출자 교체 문제가 거론되는 곳이 없다. 그런데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으로선 이 훈수가 마음에 걸린다. 연극계에 이 고위 인사의 '사단'이 형성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기에 하는 소리다. 국민극단 내에도 그 '사단'의 일원이라고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게다가 '연공서열 파괴' 공식까지 대입해 보면 대상자는 더욱 뚜렷해진다. '또다시 자기 사람을 앉히려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정황증거다. 이 고위 인사의 훈수 내용이 그의 권위와 명성에 걸맞게 옳은 것인지도 짚어볼 문제다. 국민극단 내부의 속사정이 만만치 않게 복잡하다는 점에서다. 1만여명의 극단원은 그 출신이 옛 국민극단파와 주택극단파 장은극단파 대동극단파 동남극단파 등으로 4분5열돼 있다. 그 중에서도 국민파와 주택파는 견원지간이라 할 만큼 상극이다. 이번 검열 파문으로 두 세력의 갈등은 더욱 험악해졌다. 주택파는 기존 연출자와 주역을 감싸고 돈 반면 국민파는 차제에 갈아치워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현재 국민극단에 몸담고 있는 인물로서는 이런 갈등을 치유하고 극단을 이끌어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국민파에 속하는 한 고참 극단원은 "극단이 살려면 차기 주연과 연출자는 무조건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따져볼 일은 또 있다. 제아무리 연극계에 영향력이 센 인사라지만 자신의 지분이 하나도 없는 극단에 대해 주연과 연출자 선정까지 일일이 훈수를 두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비단 국민극단의 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극단에도 이 고위 인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따라서 그의 훈수는 연극계의 고질병인 '관치 연극' 시비만 야기할 염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국민극단이 일찌감치 '행추위'라는 기구를 만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기구는 외부의 간섭 없이 차기 주연과 연출자감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른 극단에서는 없었던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국민극단의 행추위가 어떤 인물을 추천할지,그가 과연 '세계 금융의 별' 공연을 성공리에 이끌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임혁 금융부장 limhyuc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