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고수를 찾아서] 신동준 대표,올초 '4월 주가급락' 예보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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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하순.여의도 증권가에 뜬금없는(?) 보고서 한장이 돌았다.
'증시 4월중 급락'을 예고한 보고서였다.
외국인이 하루에 수백억원어치씩 주식을 순매수하는데 뭔 얘기냐는 반응 일색이었다.
한달 뒤 이 보고서는 진가를 발휘했다.
930을 넘던 지수는 4월말 거짓말처럼 720대로 주저앉았다.
이 보고서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신동준 대표다.
그는 외국인들이 4월에 배당으로 받은 돈을 송금하면서 환율이 급등하면 환차손을 피하기 위한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흐름을 정확하게 짚었다.
신 대표는 "외국인 투자가 급증한 1999년 이후 환율과 외국인매매 간 상관관계 등을 분석해 보고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식분야에서만 내공을 쌓은 게 아니다.
선물옵션에서도 시장을 읽는 눈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증권시장과는 거리가 먼 부동산 분야에도 밝다.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시장의 흐름을 끄집어내고 변곡점을 파악하는 데에는 흉내내기 힘든 경지에 도달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간 사연
그가 주식과 인연을 맺은 때는 IT(정보기술)주가 폭등하던 99년초였다.
대형 이동통신사의 5년차 직장인이었던 그는 IT장세에서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증시에 뛰어들었다.
대학시절 용산전자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반도체 회로도까지 직접 그려봤던 경험도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결과는 비참했다.
그동안 모아뒀던 알토란 같은 쌈짓돈과 직장인 담보대출로 받은 3천만원을 1년만에 모두 날렸다.
이때부터 신 대표는 주식에 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객장 대신 도서관으로 향했다.
주식을 모르고 투자하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 근처 사설독서실에 자리를 잡고 주식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으나 회의감이 들었다.
책만으론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살아 움직이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알 재간이 없었다.
이때 신 대표는 날짜 지난 경제신문에 착안했다.
86년 1월부터 99년말까지 10년치가 넘는 한국경제신문 증권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복사했다.
어느날은 왜 주가가 상승했고 다른 날은 왜 음봉이 났는지,그날의 증권면 기사와 차트를 비교해 가며 매매일지를 썼다.
그렇게 다시 6개월이 지나자 증시를 읽는 눈이 생겼다.
◆학습효과를 이용하다
그는 2001년초 다시 증시에 뛰어들었다.
2000년 내내 하락세로 일관했던 주가가 새해 들어 반등을 시작했다.
그는 코스닥등록기업인 장미디어를 공략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학습효과를 이용하겠다는 포석이었다.
과거 신문기사들은 기술적 반등기나 대세상승 초입에는 항상 직전 대세 상승기를 이끈 종목들이 먼저 상승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87∼89년 강세장은 소위 '트로이카'(은행 증권 건설주)들이 견인했는데 트로이카주는 다음번 강세장 사이클이 시작되는 93년에 먼저 시세를 냈다.
장미디어 한 종목만 3차례 매매하면서 4백60%의 수익률을 냈다.
2천만원의 투자원금은 1억원으로 불어났다.
'학습효과'로 공략 대상을 선정하되 실전매매는 기술적 분석에 따랐다.
장미디어 대박 후 주식사이트에서 '황금박쥐'란 필명으로 사이버 애널리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선물·옵션의 세계로
그 이후 잘나가던 그였지만 2002년초 다시 낭패를 봤다.
9·11 테러 이후 폭등하던 주가가 2002년 4월부터 하락세로 전환됐으나 제대로 읽지 못했다.
신 대표는 "솔직히 주가가 하락 반전할 것이란 조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큰 손실을 봐야 했던 이유를 곧바로 깨달았다.
바로 선물옵션이었다.
당시까지 선물옵션을 전혀 몰랐던 그는 외국인들이 선물·옵션 시장에서 선물을 팔고 풋옵션을 사면서 하락장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약간의 실전 매매를 병행하며 1년여 간 선물옵션 공부를 마친 뒤 2003년에 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작년초엔 8백만원을 갖고 두달 남짓만에 1억원을 벌었다.
◆국립중앙도서관 다시 찾은 사연
주식과 선물옵션에서 내공을 쌓은 그는 '독립'을 결심한다.
작년 4월 그는 샐러리맨들을 위한 투자컨설팅도 할 수 있는 'BIBR in Labs'란 회사를 차렸다.
포부는 컸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온통 부동산에 가 있다 보니 주식투자컨설팅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고객이 없었다.
'왜 개인은 부동산으로만 가 있을까.' 이 호기심은 그를 다시 부동산 공부에 몰입케 했다.
다시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70년도부터 부동산관련 한국경제신문 기사를 또 복사했다.
두달여 동안 도서관에서 살면서 그는 증시처럼 국내 부동산시장의 상승도 일정한 사이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난 7월께 결론을 냈다.
'부동산(아파트)의 상승세는 끝났다.
2007년까지 다시 부동산시장의 반등은 없을 것이다.'
◆치밀한 경제지표 분석
신 대표가 증권가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최근 한두 해 동안 증시의 주요 변곡점을 거의 다 맞췄기 때문이다.
올 4월 이후 증시 급락 가능성을 제기한 것 외에도 이라크전을 앞두고 있던 작년 3월 국내 증시의 대세 상승을 예견했다.
그해 5월엔 외국인의 대규모 매수세 유입으로 서머랠리가 올 것이라고 예상해 맞췄다.
잘 맞추는 비결에 대해 그는 "경기선행지수,무역수지,환율,금리,유가동향,IT·조선·철강과 같은 업종사이클 분석 등 30여개 국내외 경제지표와 과거 국내 증시 움직임을 비교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그때그때 시황 분석을 위해 선물옵션 시황까지 보고 있다.
작년말 동원증권 수익률대회에선 기술적분석을 이용한 초단기 매매와 미수거래를 통해 두달새 1백40%의 수익률을 내면서 2위를 차지했다.
그는 "투기적 선물옵션 매매나 기술적 매매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확신하고 있다.
'다양한 국내외 경제지표를 분석해 증시 추세를 파악하고 삼성전자 등 소수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는 것'을 투자대안으로 제시했다.
신 대표는 세번째 국립중앙도서관 행을 곧 시작할 작정이다.
채권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최근 몇십년 동안의 채권기사를 모두 복사해 오리라고 작심하고 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증시 4월중 급락'을 예고한 보고서였다.
외국인이 하루에 수백억원어치씩 주식을 순매수하는데 뭔 얘기냐는 반응 일색이었다.
한달 뒤 이 보고서는 진가를 발휘했다.
930을 넘던 지수는 4월말 거짓말처럼 720대로 주저앉았다.
이 보고서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신동준 대표다.
그는 외국인들이 4월에 배당으로 받은 돈을 송금하면서 환율이 급등하면 환차손을 피하기 위한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흐름을 정확하게 짚었다.
신 대표는 "외국인 투자가 급증한 1999년 이후 환율과 외국인매매 간 상관관계 등을 분석해 보고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식분야에서만 내공을 쌓은 게 아니다.
선물옵션에서도 시장을 읽는 눈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증권시장과는 거리가 먼 부동산 분야에도 밝다.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시장의 흐름을 끄집어내고 변곡점을 파악하는 데에는 흉내내기 힘든 경지에 도달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간 사연
그가 주식과 인연을 맺은 때는 IT(정보기술)주가 폭등하던 99년초였다.
대형 이동통신사의 5년차 직장인이었던 그는 IT장세에서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증시에 뛰어들었다.
대학시절 용산전자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반도체 회로도까지 직접 그려봤던 경험도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결과는 비참했다.
그동안 모아뒀던 알토란 같은 쌈짓돈과 직장인 담보대출로 받은 3천만원을 1년만에 모두 날렸다.
이때부터 신 대표는 주식에 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객장 대신 도서관으로 향했다.
주식을 모르고 투자하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 근처 사설독서실에 자리를 잡고 주식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으나 회의감이 들었다.
책만으론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살아 움직이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알 재간이 없었다.
이때 신 대표는 날짜 지난 경제신문에 착안했다.
86년 1월부터 99년말까지 10년치가 넘는 한국경제신문 증권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복사했다.
어느날은 왜 주가가 상승했고 다른 날은 왜 음봉이 났는지,그날의 증권면 기사와 차트를 비교해 가며 매매일지를 썼다.
그렇게 다시 6개월이 지나자 증시를 읽는 눈이 생겼다.
◆학습효과를 이용하다
그는 2001년초 다시 증시에 뛰어들었다.
2000년 내내 하락세로 일관했던 주가가 새해 들어 반등을 시작했다.
그는 코스닥등록기업인 장미디어를 공략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학습효과를 이용하겠다는 포석이었다.
과거 신문기사들은 기술적 반등기나 대세상승 초입에는 항상 직전 대세 상승기를 이끈 종목들이 먼저 상승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87∼89년 강세장은 소위 '트로이카'(은행 증권 건설주)들이 견인했는데 트로이카주는 다음번 강세장 사이클이 시작되는 93년에 먼저 시세를 냈다.
장미디어 한 종목만 3차례 매매하면서 4백60%의 수익률을 냈다.
2천만원의 투자원금은 1억원으로 불어났다.
'학습효과'로 공략 대상을 선정하되 실전매매는 기술적 분석에 따랐다.
장미디어 대박 후 주식사이트에서 '황금박쥐'란 필명으로 사이버 애널리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선물·옵션의 세계로
그 이후 잘나가던 그였지만 2002년초 다시 낭패를 봤다.
9·11 테러 이후 폭등하던 주가가 2002년 4월부터 하락세로 전환됐으나 제대로 읽지 못했다.
신 대표는 "솔직히 주가가 하락 반전할 것이란 조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큰 손실을 봐야 했던 이유를 곧바로 깨달았다.
바로 선물옵션이었다.
당시까지 선물옵션을 전혀 몰랐던 그는 외국인들이 선물·옵션 시장에서 선물을 팔고 풋옵션을 사면서 하락장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약간의 실전 매매를 병행하며 1년여 간 선물옵션 공부를 마친 뒤 2003년에 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작년초엔 8백만원을 갖고 두달 남짓만에 1억원을 벌었다.
◆국립중앙도서관 다시 찾은 사연
주식과 선물옵션에서 내공을 쌓은 그는 '독립'을 결심한다.
작년 4월 그는 샐러리맨들을 위한 투자컨설팅도 할 수 있는 'BIBR in Labs'란 회사를 차렸다.
포부는 컸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온통 부동산에 가 있다 보니 주식투자컨설팅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고객이 없었다.
'왜 개인은 부동산으로만 가 있을까.' 이 호기심은 그를 다시 부동산 공부에 몰입케 했다.
다시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70년도부터 부동산관련 한국경제신문 기사를 또 복사했다.
두달여 동안 도서관에서 살면서 그는 증시처럼 국내 부동산시장의 상승도 일정한 사이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난 7월께 결론을 냈다.
'부동산(아파트)의 상승세는 끝났다.
2007년까지 다시 부동산시장의 반등은 없을 것이다.'
◆치밀한 경제지표 분석
신 대표가 증권가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최근 한두 해 동안 증시의 주요 변곡점을 거의 다 맞췄기 때문이다.
올 4월 이후 증시 급락 가능성을 제기한 것 외에도 이라크전을 앞두고 있던 작년 3월 국내 증시의 대세 상승을 예견했다.
그해 5월엔 외국인의 대규모 매수세 유입으로 서머랠리가 올 것이라고 예상해 맞췄다.
잘 맞추는 비결에 대해 그는 "경기선행지수,무역수지,환율,금리,유가동향,IT·조선·철강과 같은 업종사이클 분석 등 30여개 국내외 경제지표와 과거 국내 증시 움직임을 비교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그때그때 시황 분석을 위해 선물옵션 시황까지 보고 있다.
작년말 동원증권 수익률대회에선 기술적분석을 이용한 초단기 매매와 미수거래를 통해 두달새 1백40%의 수익률을 내면서 2위를 차지했다.
그는 "투기적 선물옵션 매매나 기술적 매매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확신하고 있다.
'다양한 국내외 경제지표를 분석해 증시 추세를 파악하고 삼성전자 등 소수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는 것'을 투자대안으로 제시했다.
신 대표는 세번째 국립중앙도서관 행을 곧 시작할 작정이다.
채권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최근 몇십년 동안의 채권기사를 모두 복사해 오리라고 작심하고 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