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광희 (주)코오롱 사장 kenhan@kolon.com > '신뢰.' 개인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와 고객,회사와 협력업체,회사와 투자자,회사와….이 모든 관계의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신뢰'다. 그런데 우리는 '밖으로의 신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회사 '안에서의 신뢰'라는 것을 때로 잊어버릴 때가 있다. 구성원 사이에 신뢰의 연결고리가 약화되는 때는 바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상호간 신뢰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일에 대한 열정이나 혁신에 대한 열망이 높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파업으로 올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64일간의 혹독한 진통을 겪었다. 노사간 교섭 과정에서는 자주 이견이 표출되고 갈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이 때로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의 간격을 좁히지 못했을 때 결국 파업의 아픔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가 깊게 파여 흉터로 남기도 한다. 물론 성공한 수술과 적절한 요양으로 더 건강한 모습을 찾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갈등의 근본에는 상호간 신뢰 부족이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가는 실바람이 엄청난 재해를 낳는 토네이도의 씨앗이 되듯이,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개개인의 불만은 집단 속에서 큰 바람이 되곤 한다. 그리고 얕은 신뢰의 뿌리가 바람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때 중재자의 입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투'라는 말이 있듯이 올 여름에도 많은 기업들이 파업으로 크고 작은 홍역을 앓았다. 그러함에도 과거와 달리 이번 정부가 평가를 받는 것은 바로 '원칙'과 '중립'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노동계 상급단체 또한 국가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십분 이해해주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최근 노동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타파하고 '처음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다. 회사 내에도 분명 잘못된 관행이 있다. 이것을 깨뜨리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관행을 타파하는 것이 자칫 신뢰를 깨뜨리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업기간 내내 자주 언급되었던 '법과 원칙'은 그래서 중요하다. 법과 원칙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이 관행이라는 명목하에 용인돼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행을 털어버린 신뢰.그 신뢰의 뿌리에서 자라는 나무는 더욱 튼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