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카페.일산 주엽동 22평형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허모씨(31)가 집주인에게 "제발 이사 좀 가게 해 달라"고 통사정하고 있었다.


평촌에 어렵사리 마련한 '내 집'으로 이사가기 위해 전세금을 빼달라는 부탁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새 세입자도 나타나지 않고 집도 안 팔리는데 무슨 수로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겠느냐"며 거꾸로 사정한다.


지난 9일 B은행 대출창구 앞.서울 상계동에 사는 김모씨(43)는 경기 용인시 수지에 새로 마련한 아파트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새 아파트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몇달째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김씨는 잔금을 치르기 위해 할 수 없이 상계동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으러 왔다.


지금까지 받은 새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금을 합하니 매달 이자만 80만원을 내야 한다.


눈앞이 캄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C건설업체 분양사무실.서울 면목동에 사는 주부 최모씨(36)가 이 회사 직원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다.


2년반 전 분양받은 아파트의 계약을 해지하고 싶은데 계약금 일부라도 건질 수 없느냐는 것.최씨 역시 사는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수천만원의 웃돈이 붙었던 이 아파트의 분양권은 현재 분양가 수준에도 팔리지 않는다.


건설회사 입장에서도 전체 8백여가구 중 1백여가구만 입주를 마친 상태여서 최씨의 사정을 봐줄 처지가 못된다.


올 상반기 전국적으로 빈 새집이 속출하면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던 주택거래시장이 최근 들어 붕괴 직전으로 몰리고 있다.


'집값을 잡겠다'며 연이어 쏟아낸 정부의 강경 규제가 시장기능마저 마비시킨 것이다.


가을 이사철이 다가왔지만 수도권의 '역전세 대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세입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못 가는 이웃이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붕괴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 온 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건전한 거래는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의 숨통을 틔워주는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서욱진·조재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