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대 문화관 1층. 극심한 청년실업난 속에 서울대에서 열린 사상 최초의 대규모 채용행사인 '2004 우수인력 채용박람회'는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삼성전자,현대·기아자동차,SK텔레콤 등 인기가 높은 대기업 부스 앞에는 면담카드를 제출하려는 학생들이 수십미터씩 줄을 섰다. 학생들은 복도에 놓인 책상이 복잡하자 아예 벽에 자기소개서를 대놓고 꼼꼼히 신상과 경력 등을 적는 모습이었다. 지난 8월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한 박송아씨(24·여)는 "졸업을 앞두고 몇몇 대기업에 취업원서를 넣었는데 졸업에 신경쓰다보니 준비를 못해서인지 제대로 안됐다"며 "학교에서 열린 첫 채용박람회에서 원하는 직업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는 박씨는 "학교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니 좋지만 이제와서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원자핵공학과 석사 3학기인 송상철(25)씨는 "병역특례요원으로 취업을 하고 싶은데 최근 취업 사정이 어렵다고 해 미리 알아보려고 나왔다"며 "대기업을 선호하지만 중소기업도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박람회장을 찾은 학생들은 저마다 참가기업의 홍보책자를 몇개씩 챙겨들고 한 회사라도 더 상담을 받으려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하는 회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터뷰를 위해 화장에 정장차림까지 갖추고 온 숙명여대 행정학과 졸업반인 전진영씨(25)는 "이곳에서 취업을 결정하거나 취업지원서를 받는 곳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회사소개나 향후 채용일정을 알려주는 정도"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취업난 속에서도 대기업 선호현상은 여전했고 중소기업은 '찬밥'이었다. 대기업이 몰린 '우수기업관(인문계)'은 발디딜 틈조차 없었으나 중소 벤처기업이 많은 '이공계관'에는 학생들의 발길이 덜했다. 오후까지 3명만 상담했다는 에이에스비(반도체부품 생산) 임광호 차장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우수한 회사지만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란 이유로 상담을 원하는 학생은 별로 없다"며 "구직자와 기업 간 눈 높이가 다른 점도 취업난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기업 직원들은 학생들과 상담을 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 인력관리위원회 김일평 대리(33)는 "너무 바빠 집계는 못했지만 오전만 해도 1백여명 이상이 면담카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서울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 행사에는 1백40여개 기업 및 기업부설연구소가 참가했다. 주최 측인 한국산업기술협회 김용범 교육연수팀장은 "이날 오후까지 2천여명이 찾았으며 행사가 끝나는 14일까지는 5천여명이 행사장을 방문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첫 채용 박람회를 연 것은 서울대 출신도 더 이상 '몇 개 기업에 합격한 뒤 골라가는' 시대가 끝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서울대 졸업생의 순수취업률을 보면 2002년 50.9%에서 2003년 46.5%로,올해는 45.1%(4월1일 기준)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김현석?장원락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