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Bubble·거품)이 붕괴되면 그만큼 고통도 크다. 벤처 붐이 그랬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1만개 육성한다고 하더니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래선지 참여정부 들어 벤처라는 말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을 오는 2008년까지 1만개 육성하겠다고 한다. 기술혁신형 중소기업도 과학기술에 바탕을 뒀다는 점에서 벤처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 기업을 또 1만개 육성한다면 과학기술 자산이 풍부한 미국 일본 등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벌써부터 또 다른 버블이 우려된다. 기업연구소가 1만개 넘었다고 과학기술부가 발표했다. 왜 과기부가 그런걸 발표하느냐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업연구소 인정제도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기업연구소가 이 정도면 세계적인 연구소 강국이다. 혁신주도형 경제로의 탈바꿈은 이미 되고도 남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버블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상위 10대 기업이 민간기업 연구개발투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1만개 집착이 우리 경제가 10년 가까이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빠져 있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면 이런 버블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과학기술 버블은 양적인 것만이 아니라 과잉기대에서도 야기된다. 황우석 교수팀의 세계적인 연구성과는 국내 바이오기술(BT)분야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증권가에서 유행하는 말로 '황우석 효과'라 할 만하다. 특정 과학기술인을 위해 각계에서 후원회를 결성한 것도 드문 일이다. 심지어 황 교수팀에 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국제적으로 부각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걱정스런 측면도 없지 않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황 교수팀 연구성과를 가지고 너무 떠드는 것 아닌가 해서다. 문제는 그로 인한 과잉기대의 양산이다. 황 교수팀 연구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외부에서 그 연구에 물타기를 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버블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황 교수 자신은 분명히 "연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당장 불치병 치유 등 장밋빛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로 인한 버블이 꺼지면 정작 피해를 입는 것은 버블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다. 황 교수와 그 연구팀만 이상한 사람들이 되거나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마치 벤처 거품 붕괴의 최대 피해자가 진짜 벤처기업들인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과학기술은 버블과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게 우리 현실인지 모른다. 국내 최초니 세계 최초니 하는 '최초 증후군'이 지나치게 먹혀들면 영락없이 버블이기 십상이다. 세계 과학저널에 우리나라 연구논문이 많이 실린다는 것도 그렇다. 논문의 질은 고사하고 숫자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버블은 쌓여간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모두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과학기술만 있으면 지역경제가 바로 살아날 것처럼 지역혁신을 말하고 있다. 혁신클러스터다,연구개발특구다 해서 여기저기서 기대를 잔뜩 불어넣고 있기도 하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여야 정치인도 하등 다를 게 없다. 혁신이 무슨 동네 강아지 이름도 아닐텐데 버블의 후유증이 누구 몫으로 남을지 걱정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과학기술이 무척이나 강조되는 것은 그만한 도피처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는 장기주의(long-termism)에 정책 초점이 있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이야말로 장기주의의 첫 번째에 해당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어느새 단기적 정책수단이 돼버린 듯하다. 버블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