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이고 낯선 느낌의 시를 주로 써온 박상순 시인이 세번째 시집 '러브 아다지오(Love Adagio)'(민음사)를 펴냈다. 이번 시집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의미론적 시읽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소통 불능의 괴물이거나 자신의 해석능력 밖에 존재하는 신포도'(이재복) 같은 시들로 채워져 있다. '봤어.바다의 일요일이라는 영화.얼어버린 호수.검은 겨울만 생각나/봤어.모자를 쓴 초상이라는 그림.달콤한 것,향기로운 것만 생각나/봤어? 내가 숨겨둔 금장식의 하늘.내가 숨겨둔 물방울 닮은 구름/봤어? 내 지갑,내 열쇠,내 얼굴/식탁 위에 올려놓은 내 둘째 손가락 봤어?'('식탁 위의 일요일,벽 속의 소리' 중) 시인은 모든 예술적 방법을 동원해 어떤 특정한 '규정'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시인은 이에 대해 "설명이나 규정,정의 같은 것들이 삶에 있어 최선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갈등 속으로 밀어넣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시인의 눈에 비친 현실세계는 고통스럽고 무서운 곳이다. '아홉 명 또는 여덟 명의 병사가 산길에서 내린다/나는 앞에서 두 번째/맨 뒤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 지른다…내 앞에 간 어린 병사는 보이지 않고/아홉 명 또는 여덟 명의 행렬이 산길에서 멈춘다'('들국화와 단둘이' 중) 시인은 노골적으로 고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시의 어디를 봐도 구체적인 폭력의 현장은 없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끔찍한 비명의 현장이 존재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간 '아홉 명 또는 여덟 명의 병사'가 결국은 '일곱 송이 또는 여덟 송이 피어난/들국화'로 대치되면서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최승호 시인은 "해독을 거부하는 잠금장치 같은 것이 박상순의 시에는 마련돼 있다. 반복적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꿈 같은 현실을 그는 어떤 강박감 속에서 해체시키고 재편집하고 과격하게 변형시키는 듯하다"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