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붕 소리를 친다.바위 틈에서 샘물소리밖에 안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같다.' 김유정작 '봄봄'의 배경은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금병산 들머리로 산에 파묻힌 모양이 시루같다고 해서 실레마을로 불리는 작가의 고향이다. 김유정(1908~1937)은 이곳에서 2남6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휘문고보를 거쳐 들어간 연희전문을 중퇴하고 전국을 방황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1932년 '금병의숙'을 설립해 문맹퇴치 운동을 펼치는 한편 집필에 전념,'소낙비''금 따는 콩밭''만무방''동백꽃' 등 주옥같은 단편을 남기고 29세에 요절했다. 이곳 실레마을 앞 기차역의 이름이 신남역에서 '김유정역'으로 바뀐다는 소식이다. 신남역은 경춘선의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 간이역. 알려지지 않았던 곳인데 춘천시가 실레마을에 김유정문학촌을 조성한 뒤 국내외에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역이름 변경을 요청함에 따라 오는 12월부터 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미국 뉴욕의 케네디공항,프랑스 파리의 드골공항,인도 뉴델리의 간디공항,대만 타이베이의 장제스공항처럼 공항이나 역에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는 수가 많지만 우리는 거리명 외엔 사람 이름으로 정하는 일이 거의 없다. 기차역 역시 6백여개 대부분이 지명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사이라고 해서 '경강역'이라고 한 곳도 있지만. 유럽 관광지의 상당수는 예술가의 고향이나 명작의 산실이다. '모차르트 하숙집''밀레의 만종 마을'처럼 실제 가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곳도 흔하다. 근래 국내엔 '모래시계'의 정동진역,'편지'의 경강역처럼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해지는 곳도 많다. 실레마을에서 출발하는 금병산 등산로엔 김유정의 작품 이름을 따 '금 따는 콩밭길' '만무방길' '산골 나그네길''동백꽃길' '봄봄길'등의 이름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금병산은 사철 모두 좋지만 특히 눈쌓인 겨울이 일품으로 꼽힌다. 올겨울엔 김유정역에 내려 작가의 생가를 둘러보고 만무방길 따라 산에도 올라 가볼까나.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