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연맹이 단위노조 가운데 세번째로 큰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탁학수)를 제명처분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은 15일 현대중공업노조 징계 회의를 열고 참석 대의원 2백64명 가운데 87%인 2백32명의 찬성으로 제명을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 2월 현대중공업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분신 사망한 고 박일수씨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민주노총 금속연맹과 현대중공업 노조간 갈등은 제명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일단락됐다. 현대중공업(현대중) 노조는 "제명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겠다"면서도 공식 입장을 유보했다. 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독자노선을 취하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노동계 운동방향 및 구도에도 대격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태의 전말=현대중 노조가 민노총과 갈등을 빚게 된 계기는 지난 2월 회사 내 비정규 근로자인 박일수씨의 분신자살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민노총 금속연맹은 즉각 분신대책위를 구성,사회적 이슈인 비정규직 문제와 연계해 투쟁을 확대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 노조는 "분신사태가 정치적으로 악용된다"며 "노조를 배제한 어떤 협의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급기야 현대중 노조는 박씨 분신사건 이후 지난 2월부터 8개월째 금속연맹 연맹비(약 3억2천만원) 납부를 거부했고 이에 맞서 민노총 금속연맹은 제명결정을 내렸다. ◆산별과 단위기업 노조간 갈등=표면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균열로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대기업 노조와 상급단체간의 힘겨루기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민노총의 산별노조 위상강화 방침과 개별기업 노조 중심으로 이뤄져온 그간의 노동운동 관행이 충돌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현대중 노조 제명에 이어 최근 보건의료노조도 보건의료노조의 핵심세력인 서울대병원노조 지도부의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 양측간 갈등이 폭발한 것은 지난달 체결한 사용자측과의 산별합의 내용이 빌미가 됐다. ◆향후 노동운동 전망=당장 동종 조선업계 노조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중 노조가 올해로 10년째 무분규 임단협을 타결 짓는 등 국내 조선업계에는 과거처럼 강성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민주노총 노선에 수동적 태도를 보여온 조선업계 대다수 단위 사업장 노조들의 연쇄적인 이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대기업 노조의 연맹회비에 사실상 의존해온 민노총의 수입기반도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노총 등 상급단체의 노동운동 방향이 대기업 중심에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조 중심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민노총이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에 의존해 해마다 임단협 위주의 '전투적 투쟁'을 벌여왔는데 앞으로는 이 같은 노동운동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