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올리가르히(Oligarch)라 불리는 재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리가르히는 원래 법을 악용하거나 권력과의 비공식적 관계를 활용,부자가 된 거대기업가를 뜻했지만 요즘엔 러시아 경제를 움직이는 금융산업복합체를 의미하고 있다. 러시아 8대 재벌 가운데 최대 갑부로는 유코스사의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가 꼽힌다. 80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메이저 석유회사들을 제치고 각종 채굴권을 따내며 러시아 최대 부자가 됐다. 호도로코프스키의 나이는 불과 42세. 그는 은행업을 시작으로 부동산,제철소,식품회사,화학회사 등을 인수한 뒤 석유회사인 유코스까지 삼켜 버렸다. 신기에 가까운 부의 축적 과정 때문에 그에겐 '수수께끼의 사나이'란 별칭도 붙었다. 첼시의 구단주로 최근 유명 스타선수들을 거액에 스카우트한 37세의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석유회사 시브네프티를 이끄는 러시아 재계의 실력자다. 추코트카 주지사를 지내기도 한 아브라모비치는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지분을 25% 정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알파그룹의 미하일 프리드만은 주력 석유회사인 TNK와 영국 BP사와의 합병을 성사시켜 주목받는 인물이다. 프리드만은 합병을 통해 BP가 러시아 시장에 67억5천만달러를 투자하도록 하는 데 기여한 일등 공신이다. 석유 재벌이 주름잡고 있는 러시아 재계에서 이동통신회사 MTS의 블라디미르 예브투센노프는 거의 유일한 통신 재벌이다. 그가 거느린 회사만도 2백여개. 예브투센노프의 MTS는 모스크바 지역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며 지방 이동통신회사를 잇따라 인수합병하는 한편,CIS 지역으로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러시아 재벌을 가리키는 올리가르히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러시아의 경제성장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지만 정치 바람을 심하게 타면서 정치권력과 재벌 간엔 잠재적인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정부 등장 이후 옐친 정부시절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구신스키 포나틴 등이 권력과 멀어진 반면 '푸틴 패밀리'로 부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룹이 부상한 것이 좋은 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