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존경했던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시절 우상처럼 여겼던 외국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점에서 황창규 사장은 분명 행운아다.


황 사장은 85년 스탠포드대학 전기과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할 때 윌리엄 쇼클리와 운명처럼 조우하게 된다.


당시 쇼클리는 76세의 나이로 명예교수로 있었다.


인텔사의 자문역으로 일하던 87년에는 앤디 그로브 회장을 만나 가족동반으로 여러차례 식사를 했을 정도로 친분을 쌓았다.


"먼 발치에서 쳐다봤던 인물들과 직접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진정 가슴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당대 반도체 거장들과의 만남 이후 황 사장은 스스로 인생의 좌표를 '반도체 유목민(semiconductor nomad)'으로 설정했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옮겨가는 유목민처럼 신기술 개발을 위해 부단하게 정진하겠다고 결심한 것.그래서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옛 돌궐제국의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황 사장에게 요즘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휴렛팩커드(HP)의 CEO 칼리 피오리나를 들었다.


1년에 1백50일 이상을 해외출장으로 보내면 아무래도 바깥에 친구가 생긴다는 설명이었다.


'유목민'을 자처하는 황 사장에게 국경이나 소속 기업,물리적 한계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