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러시아 사람이면 누구나 모스크바를 어머니처럼 느낀다고 읊은 적이 있다. 내가 처음 방문한 1989년 모스크바의 겨울은,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고금(古今)이 서로 교차되고 있었다. 코스모스호텔의 창문을 열면,가가린우주기념탑이 하늘을 금세 날아오를 듯이 솟아 있었고,그 주변 시가지는 온통 붉은색의 대형 깃발이 사회주의의 표상(表象)인 양 나부끼고 있었다. 그 아래 상점 앞에서는 일생의 3분의1을 줄서기로 보낸다는 모스크바 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이데올로기로 과적된 삶의 무게를 엿볼 수 있었다. 러시아의 민요에서 '눈내리는 자작나무 가로수에 저녁햇살이 빛난다'고 하였건만,모스크바의 햇살은 온기나 광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단지 '차이코프스키'영화를 통해 매료된 적이 있는 자작나무숲의 장관이 상록수와 함께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모스크바 대학의 풍경은 여간 싱그럽지 않았다. 모스크바 오른편 강변을 따라 가늘고 길게 전개되는 고리키의 거리에 '미야코프스키'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혁명시인 미야코프스키의 동상이 서 있는데,그의 시(詩)에서 "인류의 봄을 노래하듯이 노래한다. 나의 조국,나의 공화국!"을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갈망하는 역사의 봄이 어디쯤 와있는지는,우리는 모른다. 다만 이달 초 러시아의 북오세티야에서 발생한 인질 참사로 분노와 비통속에 잠겨 있을 러시아인의 마음속엔 그 시인이 갈구하던 인류의 봄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우울한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도 착잡하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는 푸틴에게 노 대통령의 방문이야말로 커다란 위안이 될 것이다. 더구나 푸틴 자신이 보통사람일 때인 지난 92년 3월에 부산을 방문해 역동적인 부산과 부산사람들의 모습에 감명받았다는 얘기를,그 당시에 들은 적이 있다. 바로 노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부산이야기로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간다면 두 지도자는 의기투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스크바와 부산의 만남이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 서쪽 끝인 칼리닌그라드가 밤을 맞이할 시각이면 동쪽끝의 추코트반도에서는 태양이 떠오른다고 한다. 러시아는 세계 육지의 6분의1이라는 땅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땅부자인 셈이다. 우리는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좋은 결실을 거둬 우리 기업이 플랜트 사업에 진출해 그 기회의 땅을 일굴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