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화폐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연구단계를 지나 구체적인 검토의 초기단계에 와 있다"고 언급함에 따라 화폐개혁 논쟁이 다시 수면위로 불거지는 양상이다. 이 부총리가 지난 5월 "그런 논의를 할 만큼 우리 경제가 한가하지 않다"고 말했던 점을 상기하면 상당한 진전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지난 몇달 사이에 우리 경제가 화폐단위변경을 거론할 만큼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부측은 그야말로 기초연구에 불과할 뿐 '당장 시행할 이유가 없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으나 사실이 그렇다면 화폐단위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에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화폐단위변경은 정부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심리적인 불안감을 주면서 경제전반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든 화폐체계를 바꾸는 문제는 공론화에 앞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경제여건을 감안한 심도있는 연구와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화폐단위 변경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면 인플레 심리가 커지는 것은 물론 혹시 있을지 모를 예금동결 등에 대한 우려로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투기가 늘어나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해외로의 자본유출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기 때문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이뤄진다면 원화의 국제적인 위상이 제고되고, 높은 액면단위로 인한 상거래의 불편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물가상승이 불을 보듯 뻔하고 새 화폐 발행과 자동화기기 회계프로그램 교체를 비롯 사회적인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등 문제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전인 1959년부터 액면절하 논의를 하고 있는 일본이 아직 최종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우리 정부도 경제가 어려운 지금 부작용이 큰 화폐단위변경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를 하기보다는 좀더 신중한 연구검토를 선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