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겠다는데 굳이 오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고…."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이례적으로 한은을 찾아온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일행을 한 시간 가까이 만났다. 국정감사 기간도 아닌데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한은을 방문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정부는 물론 정치권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는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게 한은 안팎의 반응이다. 박 총재는 이날 오후 2시 접견실에서 이 의장과 이계안 정장선 김현미 의원 등 열린우리당 방문단과 접견했다. 당에서는 주로 추석을 앞두고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확대를 주문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화폐단위 절하(리디노미네이션) 논란과 관련,박 총재는 "정부가 합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할 문제이며 국회나 언론이 떠들썩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전달했다. 이 의장도 "화폐개혁 논쟁이 불거져 혼란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당 차원에서 국정감사 기간에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회동은 열린우리당이 추석 전 '민생투어' 일환으로 한은에 면담을 요청해 마련됐다. 그러나 한은 내부에선 자칫 오해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특히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10월8일)에서 어떤 이유로 콜금리를 인하하든 여당 의장과의 회동이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지난달 10일 박 총재가 이해찬 총리와 만난 이틀 뒤 열린 금통위에서 콜금리를 인하한 것이 한동안 구설수에 올랐다"며 "솔직히 한은으로선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여당 의장의 방문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지만 여당측도 중앙은행을 직접 찾는 것은 자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의장 일행은 한은 방문에 이어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신동혁 은행연합회장,강권석 기업은행장,신상훈 신한은행장 등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의장은 "정부 여당은 경제살리기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은행들도 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잘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의장은 또 "일부에서는 정부·여당의 정책이 사회주의적이어서 투자를 못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말이 안 된다"며 "자꾸 이런 말들이 퍼지니까 국민들의 경제심리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은행에 대한 감독당국의 간섭을 줄이고 각종 규제도 과감히 없애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장들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추석자금을 특별 배정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투자세액공제를 확충하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오형규·하영춘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