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에 위치한 한 중학교를 방문했을 때다. 학생들이 4∼5명씩 조를 이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사무용품 전문회사인 스테이플즈는 어때? 당분간은 악재가 없겠는데.여름방학이 지나면서 문구 수요도 늘어나고 있어." "반도체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가 좋겠어.주가수익률에 비해 너무 많이 떨어졌거든." 경제교육 과정 중 모의투자 시간이었다. 그들은 1만달러란 가상의 금액을 갖고 4개 이내의 투자종목을 선택한 뒤 조별로 그 내용을 설명했다. 발표가 끝난 후 교사의 평가가 이어졌고,다음 시간에 그 결과를 분석키로 했다. 책상 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식시세표와 차트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이 학교의 주식투자 교육은 미국 내에서는 특별한 광경이 아니다. 주식교육은 공교육의 일환으로 각 주마다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를 평가하는데 대표적 척도로 꼽히는 PER(주가수익비율) 개념이 미국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은 중학교때다. 10대 초반부터 주식시세표를 읽는 방법을 배우며 PER와 우선주,시가,종가와 같은 기본 용어들을 접하게 된다. 주식이 저축과 함께 건전한 투자수단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중·고교생은 물론 PER를 이해하는 대학생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학 경제학과의 투자론 과목에서나 이 말을 접할 수 있어서다. 증시교육에 관한 한 우리 대학의 경제학부 수준은 미국 중학생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지난 4월 미국 경제교육단체인 '주니어어치브먼트(JA)'가 전국 1천명의 13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5.5%가 주식투자를 한다고 응답했다. 16세 이상은 20%를 웃돌았다. 한국의 청소년 주식투자가 거의 전무한 점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미국 청소년들이 이렇듯 주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교육 덕분이다. 미국은 NGO와 정부기관 등이 프로그램을 개발,학교 등 공교육 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금융투자교육을 실시한다. 초등학교에서는 창업,고용,합자회사 및 주식회사 설립 등의 과정을 통해 주식 발행의 의미를 깨닫는다. 중학교에서는 투자자 입장에서 시세변동과 종목분석 등을 배우고 모의투자를 해본다. 고교와 대학교 때는 채권과 각종 펀드상품을 배우고 실제 투자클럽을 만들어 운용하기도 한다. SMG(Stock Market Game)란 미국 청소년 대상 모의투자경진대회에는 매년 전역에서 70만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금융투자교육은 참담한 수준이다. 일단 초·중·고교 교과과정에서 주식교육은 거의 전무하다. 초등학교 '사회와 탐구'과목의 경우 가계부를 만드는 법,은행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법 등 저축의 미덕만을 강조할 뿐 다른 방식의 투자는 일절 다루지 않는다. 중학교에서도 경제부문을 담당하는 사회과목 역시 소비 절약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할 뿐이다.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기업 자본조달 방식의 하나로 주식을 언급하면서 보통주와 우선주의 개념만을 다루고 있다. 한국 학생들은 투자방식은커녕 주식의 기본개념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로 진출하게 되는 셈이다. 주니어 어치브먼트의 한 교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를 한다는 워런 버핏도 11세때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했다"며 "학교교육은 자칫 도박으로 비쳐질 수 있는 주식투자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알려주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