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S은행 안양 석수동 지점.사람들이 객장 한구석의 조그만 책상 앞에 줄은 선다. 그들의 일을 처리해주는 사람은 은행 직원이 아닌 청원경찰.고객들은 창구 직원이 일을 처리해준다 해도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고,웬일이세요?" "밀린 공과금 때문에 왔지." "굳이 오실 것까지야.제가 출근길에 받아오면 될 걸.그나저나 지난번 다친 다리는 다 나으셨어요?" "다 나았으니까 이렇게 왔지." 이 광경의 주인공 한원태씨(51).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는 16년간 이곳에서 일하며 지점 수탁액 5백억원의 절반이 넘는 3백억원의 예금을 유치했고 신용카드도 3천좌나 개설했다. 그 이면에는 고객에게 영혼까지 바치는 친절 서비스가 있었다. 최근 출간된 '300억의 사나이'(한원태·김영한 지음,다산북스)는 그의 고객감동 드라마를 담은 책이다. 한씨는 대학노트에 1천3백여 고객의 이름과 전화번호,주요 일지 등을 기록해놓고 고객을 대신해 직접 은행 상품을 알아본 뒤 다른 금융상품과의 차이점,장단점을 하나씩 살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의 서비스 3원칙은 '고객을 위해 은행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밤과 낮을 가리지 않으며,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 한씨는 기술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군 제대 후 맞벌이 행상 등으로 고생하다가 한국보안공사 용역직 파견경찰로 석수지점에 근무하게 됐다. 그 후로 '청원경찰은 도난사고를 감시하는 단순한 경비원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은행의 얼굴'이라는 지점장의 충고를 새기며 대고객 서비스에 나섰다. 고객들과 지점장의 탄원으로 정식 직원이 된 뒤에도 그는 다른 지역 은행들의 거액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지금도 석수동 새마을금고에서 무의탁 노인들까지 돌보며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있다. 1백91쪽,1만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