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를 맞아 일본의 돈 많은 노인들이 '귀한 손님' 대접을 받고 있다. 편의점에서 자동차 회사에 이르기까지 기업은 이들의 소비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의류 잡화상들이 알아낸 사실은 '노인 컬렉션'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령 여성들은 검고 단정한 디자인보다 오히려 분홍색 구두를 좋아한다. ◆5명 중 1명 노인=일본 총무성은 19일 65세 이상 일본인이 1년 만에 55만명이나 늘어 2천4백84만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고령자 비율 19.5%로 선진국 중 최고로 높다. 총무성은 2014년이면 이 비율이 25.3%가 돼,국민 4명 중 1명은 노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본 고령 인구는 지갑이 두둑하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구별된다. 일본과 미국은 1인당 소득(GNI)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일본 노인들이 모아놓은 자산은 가처분소득의 24배로 6.6배를 가진 미국 노인들보다 3배 이상 부자다. 60세 이상 일본 노인가구의 순저축액은 평균 2천4백12만엔(2002년)이다. ◆노인용 상품 급증=이제 일본 재계의 키워드는 '노심(老心)잡기'다.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지난 18일 도쿄발 기사에서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휠체어나 지팡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니기 쉽게 매장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체 손님 중 50세 이상이 22%로,10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도요타와 닛산은 휠체어가 오르내리기 쉬운 '복지 카'를 내놨고,가구 회사들은 관절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키 높은 의자를 팔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하와이에 '은퇴 별장'을 마련하라고 판촉 중이다. ◆"나를 위해 돈 쓴다"=일본 광고회사 하쿠호도는 일본 노인들의 소비 패턴과 관련,"가족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돈을 쓴다는 점에서 여타 아시아국 고령자들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소비재의 경우에는 '노인용 컬렉션'은 절대 어필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세이부 백화점은 검은색 구두와 신축성 좋은 벨트 등을 모아 노인용 잡화코너를 만들었다가 참패했다. 여성 노인들이 검은색 말고 분홍색 구두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본 노인들은 지갑을 여는 데 조심스럽지만 한 번 쓰겠다고 결심하면 통이 큰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 조사에서 50∼69세 중·노년층이 가장 큰 돈을 투자한 소비재는 TV였는데 60대 노인들이 구매한 TV는 대당 9만8천2백52엔짜리로,여느 연령대보다도 비싼 제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