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여행해 보면 박물관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아무리 조그만 동네라도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그 고장 출신 명사에 대한 일대기가 유품들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역할모델로 치켜세우면서 시쳇말로 영웅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들을 둘러보아도 졸업생들의 동상과 흉상이 곳곳에 서 있다. 그들을 '큰 바위 얼굴'처럼 여기며 은연중 닮아가라는 암시인 셈이다. 비록 살아 생전에 많은 허물이 있었다 해도 그가 끼친 공적이 출중했다면 웬만한 허물은 눈감아 주는 게 미국사회다. 여기에는 지역공동체나 학교가 앞장서고 있는데 '인물'을 만드는 출중한 재주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주민들과 학생들은 이 인물들을 통해 자긍심과 대리만족을 얻고 있으며 연천한 역사를 의미있게 포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인물 만들기'가 사회 각 분야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영웅이 없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출중한 인물들이 많은데 이순신 세종대왕 을지문덕 이황 등이 그들이다. 문제는 20세기 이후 현대사에서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이 존경할 만한 인물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아이들의 교육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우려가 종종 제기돼 왔다. 급기야 한국메세나협회가 '영웅만들기'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협회에서는 전국 초등학교에 공문을 보내,모교출신 중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방면에서 뛰어난 공헌을 한 졸업생을 선정하면 동상건립비를 일부 지원해 주기로 했다. 우상이 될 만한 인물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선다는 취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는 영웅이 키워지지 않고 있다. 튀는 사람을 견제하고,커다란 업적을 이루었다 해도 사소한 인간적 실수를 빌미로 끌어내리는 폐습이 없지 않다. 큰 것을 인정하고 작은 것을 관용하는 사회분위기가 아쉬운 현실이다. 아무쪼록 '영웅만들기 운동'이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분위기로 바뀌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대는 영웅을 밝히고 영웅은 역사를 남긴다고 하지 않는가.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