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院산책] (10) 선암사 칠전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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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산사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매표소를 지나 부도밭과 목장승,보물 제400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삼인당(三印塘)을 지나 일주문까지 1.5 를 단숨에 올랐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의 조계산 선암사.
전국적인 '불사(佛事)붐'에도 불구하고 전통 사찰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웅전의 뒤로 올라 팔상전 불조건 원통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칠전선원(七殿禪院). '칠전'이란 선암사에서 가장 윗쪽에 있는 일곱 채의 건물군이다.
석가모니 이전에 세상에 출현했던 과거 칠불(七佛)을 상징한다고 한다.
'湖南第一禪院(호남제일선원)'이라는 편액을 건 문간채와 정면의 응진당,그 왼편의 미타전과 진영당,오른편의 달마전과 벽안당,자그마한 산신각 등이 한 울타리 안에 자리잡고 있다.
선원장과 주지를 겸하고 있는 지허(指墟·63) 스님의 안내로 선방인 달마전 쪽에 발을 들여놓자 감회가 새롭다.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선암사 대각암에서 오도(悟道)한 뒤 칠구(七區) 선원을 세운 이래 무수한 선사들이 거쳐간 수행터 아닌가.
그런 만큼 규모가 대단할 것이라던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선방은 불과 두세 평 남짓,4∼5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다.
흰 창호지를 사방 벽에 발라놓은 방에는 좌복 4개가 깔려 있다.
지난 여름 안거 때 수행하던 그대로다.
"칠전선원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지리산 칠불암선원,금강산 마하연,묘향산 보현사선원과 함께 전국 4대 선원으로 꼽히던 곳입니다.
중국의 석옥청공 선사로부터 법을 전해받은 태고보우 국사가 '萬法歸一 一歸何處(만법귀일 일귀하처·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의 화두를 들고 가지산과 제방에서 수행하던 종풍을 그대로 잇고 있지요."
현재 칠전선원은 선암사의 상선원이다.
하선원인 심검당은 강원 학인 등이 안거 때 참선하는 곳이고 칠전선원의 달마전은 지허 스님을 비롯한 4∼6명의 스님들이 결제 해제 따로 없이 늘 정진하는 장소다.
여름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만행을 떠나고 지금은 지허 스님과 한 명의 수좌만 정진 중이라고 한다.
태고보우 국사와 마찬가지로 '만법귀일 일귀하처'를 화두로 삼고 있는 지허 스님에게 선의 의미를 물었다.
"화음경에 '만약 부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하라(若人欲識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는 말씀이 있어요. 허공과 같이 툭 터져야 걸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시대에는 말씀만 듣고도 '허공'이 됐어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 근기가 약해지면서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도 '허공'이 됐다가 안 됐다가 했어요. 그래서 허공을 가리킨 게 화두예요.'부처가 뭐냐'에 '마른 똥막대기'라고 하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는데 '뜰앞의 잣나무'라고 한 것은 허공을 허공으로 가리킨 것이지요."
알 듯 모를 듯한 '허공 법문'이다. 중생을 위한 보충 설명이 이어진다. 구름 산 바다 물,그리고 너와 내가 있는 이 곳이 허공이다. 허공은 빈 것인데 이런 게 들어 있다.
왜 그럴까.
비어 있기 때문에 이런 실상이 있는 것이다.
실상은 비어 있음을 나타내고 비어 있으므로 실상이 있다.
그래서 산도 구름도 허공이다.
그러니 그 무엇에도 집착하거나 매일 필요가 없다….
"참선한다고 하루종일 앉아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어묵동정(語默動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화두를 순일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요. 도시에 살든 산에 살든 매일 아침 예불을 올리고 하루 4시간씩만 참선해 보세요."
실제로 지허 스님은 13세에 선암사로 출가한 이래 야생차 잎을 따서 덖고 비벼 전통차를 만들어온 '차의 명인'이다.
근년부터는 선암사 주지를 함께 맡아 절 살림도 책임지고 있다.
수행정진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지허 스님은 중국의 남악회양 선사(677∼744)와 마조도일 선사(709∼788)의 일화를 들려준다.
남악은 마냥 좌선만 하는 마조에게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겠다면서 '앉아 있는다고 부처가 되느냐'고 힐난했다.
"사람들은 부처가 된다는 걸 자기의 잣대로 재려고 해요.참선하면서도 1학년,2학년 오르듯이 선방 경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진도가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그런 생각마저 떨친 무념무상이 중요합니다."
지허 스님은 그래서 다선일여(茶禪一如)를 강조한다.
차와 선은 외형상 다르지만 차를 잘 음미하는 것은 곧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질적으로도 차는 참선할 때 번뇌와 수마(睡魔·잠) 무기(無記·멍청함) 등을 없애주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한다.
차를 만드는 과정도 수행의 과정이다.
지허 스님은 "차잎을 덖고 비비는 과정은 사람이 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를 차가 되게 돕는 과정"이라고 했다.
선방 뒤켠으로 문을 열고 나서자 칠전선원 뒤편 6천여평의 차밭을 가로질러 땅 밑으로 흘러온 물이 대통을 타고 내린 뒤 네 개의 돌확을 채우고 흐른다.
돌확의 물맛이 차맛처럼 맑다.
순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매표소를 지나 부도밭과 목장승,보물 제400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삼인당(三印塘)을 지나 일주문까지 1.5 를 단숨에 올랐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의 조계산 선암사.
전국적인 '불사(佛事)붐'에도 불구하고 전통 사찰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웅전의 뒤로 올라 팔상전 불조건 원통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칠전선원(七殿禪院). '칠전'이란 선암사에서 가장 윗쪽에 있는 일곱 채의 건물군이다.
석가모니 이전에 세상에 출현했던 과거 칠불(七佛)을 상징한다고 한다.
'湖南第一禪院(호남제일선원)'이라는 편액을 건 문간채와 정면의 응진당,그 왼편의 미타전과 진영당,오른편의 달마전과 벽안당,자그마한 산신각 등이 한 울타리 안에 자리잡고 있다.
선원장과 주지를 겸하고 있는 지허(指墟·63) 스님의 안내로 선방인 달마전 쪽에 발을 들여놓자 감회가 새롭다.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선암사 대각암에서 오도(悟道)한 뒤 칠구(七區) 선원을 세운 이래 무수한 선사들이 거쳐간 수행터 아닌가.
그런 만큼 규모가 대단할 것이라던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선방은 불과 두세 평 남짓,4∼5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다.
흰 창호지를 사방 벽에 발라놓은 방에는 좌복 4개가 깔려 있다.
지난 여름 안거 때 수행하던 그대로다.
"칠전선원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지리산 칠불암선원,금강산 마하연,묘향산 보현사선원과 함께 전국 4대 선원으로 꼽히던 곳입니다.
중국의 석옥청공 선사로부터 법을 전해받은 태고보우 국사가 '萬法歸一 一歸何處(만법귀일 일귀하처·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의 화두를 들고 가지산과 제방에서 수행하던 종풍을 그대로 잇고 있지요."
현재 칠전선원은 선암사의 상선원이다.
하선원인 심검당은 강원 학인 등이 안거 때 참선하는 곳이고 칠전선원의 달마전은 지허 스님을 비롯한 4∼6명의 스님들이 결제 해제 따로 없이 늘 정진하는 장소다.
여름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만행을 떠나고 지금은 지허 스님과 한 명의 수좌만 정진 중이라고 한다.
태고보우 국사와 마찬가지로 '만법귀일 일귀하처'를 화두로 삼고 있는 지허 스님에게 선의 의미를 물었다.
"화음경에 '만약 부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하라(若人欲識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는 말씀이 있어요. 허공과 같이 툭 터져야 걸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시대에는 말씀만 듣고도 '허공'이 됐어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 근기가 약해지면서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도 '허공'이 됐다가 안 됐다가 했어요. 그래서 허공을 가리킨 게 화두예요.'부처가 뭐냐'에 '마른 똥막대기'라고 하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는데 '뜰앞의 잣나무'라고 한 것은 허공을 허공으로 가리킨 것이지요."
알 듯 모를 듯한 '허공 법문'이다. 중생을 위한 보충 설명이 이어진다. 구름 산 바다 물,그리고 너와 내가 있는 이 곳이 허공이다. 허공은 빈 것인데 이런 게 들어 있다.
왜 그럴까.
비어 있기 때문에 이런 실상이 있는 것이다.
실상은 비어 있음을 나타내고 비어 있으므로 실상이 있다.
그래서 산도 구름도 허공이다.
그러니 그 무엇에도 집착하거나 매일 필요가 없다….
"참선한다고 하루종일 앉아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어묵동정(語默動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화두를 순일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요. 도시에 살든 산에 살든 매일 아침 예불을 올리고 하루 4시간씩만 참선해 보세요."
실제로 지허 스님은 13세에 선암사로 출가한 이래 야생차 잎을 따서 덖고 비벼 전통차를 만들어온 '차의 명인'이다.
근년부터는 선암사 주지를 함께 맡아 절 살림도 책임지고 있다.
수행정진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지허 스님은 중국의 남악회양 선사(677∼744)와 마조도일 선사(709∼788)의 일화를 들려준다.
남악은 마냥 좌선만 하는 마조에게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겠다면서 '앉아 있는다고 부처가 되느냐'고 힐난했다.
"사람들은 부처가 된다는 걸 자기의 잣대로 재려고 해요.참선하면서도 1학년,2학년 오르듯이 선방 경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진도가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그런 생각마저 떨친 무념무상이 중요합니다."
지허 스님은 그래서 다선일여(茶禪一如)를 강조한다.
차와 선은 외형상 다르지만 차를 잘 음미하는 것은 곧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질적으로도 차는 참선할 때 번뇌와 수마(睡魔·잠) 무기(無記·멍청함) 등을 없애주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한다.
차를 만드는 과정도 수행의 과정이다.
지허 스님은 "차잎을 덖고 비비는 과정은 사람이 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를 차가 되게 돕는 과정"이라고 했다.
선방 뒤켠으로 문을 열고 나서자 칠전선원 뒤편 6천여평의 차밭을 가로질러 땅 밑으로 흘러온 물이 대통을 타고 내린 뒤 네 개의 돌확을 채우고 흐른다.
돌확의 물맛이 차맛처럼 맑다.
순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