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환 한국수입업협회 회장 shk@koima.or.kr > 요즘 어느 TV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Danny Boy)'가 흘러나와 문득 그 노래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10여년 전 우리 회사 미국 지사장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마침 다음날이 딸 결혼식이라기에 참석하게 됐다. 1백50여명의 하객 중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모두 백인들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연회가 이어졌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지사장이 나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웨딩파티에 초대받으면 어떻게 축하하느냐"고 물었다. 축의금을 전하기도 하고 축가를 부르기도 한다고 했더니 내게 노래를 청했다. 갑작스레 영어로 노래를 하려고 보니 마땅한 곡이 떠오르지 않아 평소에 즐겨 듣고 불렀던 '대니 보이'를 선곡했다. 2절까지 완창했는데, 많은 하객들이 숙연하게 듣다가 노래가 끝났을 때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때 기분이란 가수들이 바로 이런 맛에 노래를 부르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지사장이 "당신이 '대니 보이'를 부르는 동안 우리 어머님은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며 "왜 그런지 아느냐"고 물었다.사연을 물었더니 지사장 가족과 그 파티에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아일랜드계 후손들이란 것이다.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아일랜드 민족의 애달픈 정서가 이 노래에 담겨져 있다는 얘기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런 사연도 모른 채 '대니 보이'를 불러 즐거워야 할 연회장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 대니라는 목동과 그의 소꿉친구 안젤라가 살았다. 대니는 목장에서 일을 했고,안젤라는 도시로 나가 학교를 다니면서 멋진 남자들과 사귀느라 대니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성인이 될 즈음 대니는 안젤라를 그리워하다가 그만 병을 얻어 죽게 됐고,남성들로부터 버림받은 안젤라는 첫사랑을 찾아 돌아왔지만 대니는 이미 차디찬 땅 속에 묻혀 있었다. 안젤라는 대니의 묘를 찾아가 "I love you so…"라며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다는 사연이다. 그 이후 지사장의 가족과 친지들은 내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니 보이' 생각이 난다며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내게 이 노래를 청하곤 한다. 그리고 10년 전 결혼한 그의 딸은 지금 어엿한 두 자녀의 엄마가 되었다. 슬픈 사연이 담긴 노래였지만 당시 내가 불러준 '대니 보이' 덕분에 사랑의 소중함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그들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