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달러, 얼마로 만족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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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ㆍ경제학 >
사람은 몇 벌의 옷으로 살아야 하나? '단벌신사'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던 시절에는 거개의 국민들이 나들이 옷 달랑 한벌로 사시장철 지냈다.
살림이 좀 넉넉해진 요즘에는 철따라 옷이 다르고, 같은 계절에도 여러벌 옷가지를 장만해두고 자주 갈아입는다.
1960년대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 경제학자 마크러프(1902∼1983년)는 자기 부인을 빗대어 '마크러프 부인의 의상(Mrs.Machlup's wardrope)'이란 말을 유행시켰다.
몇벌의 옷이 있어야 만족스러운가는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이것은 국제금융가에서 각국의 국제유동성(달러) 보유가 얼마면 적정한가를 놓고 열띠게 논란될 때 나온 얘기다.
외환보유액을 국민총생산 또는 연간 수입수요 등에 대한 일정비율을 기준으로 삼자는 중론에 대해 마크러프가 던진 말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보유액 늘리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이미 보유액이 1천7백억달러를 넘어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달러 쌓기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달러 보유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인가? 그것이 선진국 지표인가, 고수익 보장 자산인가?
내로라는 경제 선진국들이 몰려 있는 서유럽 지역에서 한국 만큼 달러 보유액을 쌓고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영국처럼 자국통화를 쓰면서도 건전한 거시경제정책으로 신뢰 받고 있거나,유로지역 국가들처럼 단일 통화(유로)를 쓰고 있어 투기적 공격사정권에서 벗어나 있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도합 2조달러 안팎의 엄청난 보유액을 안고도 부족한 듯하다.이들 국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는 낮고, 지역내에는 통화 스와프 같은 느슨한 지역 방어체제가 있을 뿐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미교역 흑자는,상품은 태평양 건너 동쪽으로 흐르는 반면 달러는 서쪽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은 보유 달러의 상당부분을 다시 미국으로 보내 국공채 등에 투자 운용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 주가를 떠받치고,높은 주가가 미국 가계들이 느끼는 부(富)의 효과를 부추겨 소비지출을 늘린다.
그 덕분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불리고, 미국은 적자를 돈 찍어 메우고 있다.
미국 밖에 달러가 넘쳐나고 있다.
정부는 얼마나 더 달러를 쌓을 작정인가? 무역수지 흑자로 쌓이는 달러에 추가해서 정부는 외평채를 발행해 보유액에 보태고 있다.외평채 발행금리가 보유달러 운용수익률보다 높은 현실에서 손해나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외환시장에서도 환율 치켜올리기에 따른 통화조작의 일환으로 통안채 발행이 늘고 있다.
그 금리부담 역시 보유액 유지비용인 셈이다. 외환보유와 그 운용의 편익 분석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지난주(9월16일) 외평채 발행을 잘 마감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발행액의 3배 이상 주문이 있었고, 종전보다 낮은 금리조건(미국 국채금리에 0.85%포인트 가산)으로 매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무진의 노고는 칭찬할 만하다.
작은 그림에서는 성공이다. 그러나 그림을 크게 보면 우리 보유액 일부를 미국 국공채에 운용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가산금리 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는 손익계산이 나온다.
외환보유액을 추가적으로 늘리기보다는 적정규모를 정하고 그 이상 보유가 무모함을 인정해야 한다. 외환보유는 따지고 보면 외환 투기자들로부터 심리적으로 기를 꺾기 위한 것이다.비용을 적게 들이기 같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는 길을 선진국 예에서 찾으면 보인다.
사람에게 옷이 날개라는데, 옷 몇벌로 살아야 하나? 못난 사람은 철철이 여러벌 두고 자주 바꿔 입어도 천한 티가 나고, 잘난 사람은 잘고른 한두벌로도 귀티나고 존경 받고 산다.
국제금융가의 존경을 받는 것은 단순히 보유외화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경제·비경제 외교의 우열과 국내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신뢰성 여부로 판가름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진가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현 정부는 바로 이 점에서 혼미를 보이기에 외국투자자들은 불안을 느끼고 투기의 틈새가 벌어지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