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 시인 > 고개 들어 사방 아무 하늘을 쳐다보아도 새가 세 마리는 날고 있던 곳.벼 익는 향기,금색 파도에 벼 낱알 부딪히는 소리.어른들이 줄 서 벼를 베어 나오면 논가로 쫓겨 몰려나오던 메뚜기들의 살 오른 뒷다리.곡식 중에 키가 제일 큰,장수같은 수수대궁의 묵직한 인사.길가에 앞으로 나란히 하고 피어나던 코스모스.고구마 밭에 떨어지던 홍시의 달콤함.물밑 자갈을 읽으며 흘러내리던 개여울의 반짝임.흙 마당에서 턴 녹두를 먼지 폭삭 뒤집어쓰고 키질 하던 어머니.내 마음의 고향. 작년 한가위 날 나는 고향에 가지 못했다. 이곳 강화도 동네 사람들이 고향에 언제 갈 거냐고 자꾸 물었다. 나는 고향이 가까워서 하루면 갔다 올 수 있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고향에도 못 간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추석 전날 서울로 외출을 했다. 신촌 PC방에서 밀린 글을 쓰고 여관에서 하룻밤을 잤다. TV에서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 이야기가 나왔다. '그대들 쉽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라'라는 엘리어트의 시구절을 생각하며 고향에 갈 수 있어도 못가는 사람들의 쓸쓸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큰일이었다. 신촌 이발소들이 다 문을 닫았다. 고향에 갔다 온 것처럼 보이려면 머리라도 깎아야 하는데,미용실들도 다 문을 닫았다. 난감해하던 끝에 이대 앞 미용실들이 떠올랐다. 용돈이 생긴 여학생들이 머리를 할 것 같았다. 짐작대로 미용실들이 문을 열고 있어 머리를 깎고 나니 마치 고향에 다녀 온 것처럼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강화읍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경진 아빠가 전화를 했다. 읍에서 차 기다리고 있다니까 빨리 전등사까지만 차를 타고 오라는 거였다. 차를 타자 경진 아빠가 차를 초지진 쪽으로 몰았다. 아니 왜 이리 가지? 묻자 처갓집에 가서 애들을 태우고 가자고 했다. 경진 아빠 처갓집 분위기가 이상했다. 밥상을 차려온 경진 아빠 장모님이 나를 아래위로 살펴보시는 눈빛도 그렇고 장인어른이 가족 관계를 묻는 것도 그랬다. 성격이 활달한 경진 엄마가 자기 여동생을 불렀다. "아저씨 선 보자고 하면 안 올 것이 뻔해서… 내 동생 예쁘지요?" 밥을 먹고 나자 첫 대면에 참한 느낌이 드는 여동생과 나를 바닷가에 내려놓고 늦게 오라고 하고 휙 떠났다. "지난번에 고향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친구 엄마가 민복인 결혼했냐고 물어서 결혼은 못했는데 사귀는 여자는 있다고 하셨다나요." 아가씨가 잘 웃어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직업도 없고 벌어 놓은 재산 하나 없는 내게 자기 친 동생을 소개시켜 준 경진 엄마 마음이 고마워 더 기분이 좋았다. 난생 처음 선이라는 것을 보고 동네로 돌아왔다. 동네 익선이 형이 전화를 했다. 다래술이 잘 익었는데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객지에 사는 내가 안돼 보였던지 고기와 떡과 술을 차려주었다. 형은 내가 고향에 가지 않은 것을 아는 듯도 했다. 나는 고향에 가지 않고도 동네 사람들 따뜻한 마음에 행복한 추석을 작년엔 보냈었다. 20여년 전 추석 날이었다. 명절 때면 일찍 와 한복을 입고 남의 집 지방도 써주고 장기도 두던 큰형이 보이지 않았다. "형이 왜 보이지 않죠?" "여름에 네 형 죽었다. 네가 직장을 옮기고 연락이 되지 않아서…" 어린 조카를 데리고 형 산소엘 갔다. '야,우리 아빠 무덤 두 개가 되었네'하고 새로 들어선 딴 사람 산소를 보고 좋아하던 조카.그 조카가 커서 군대도 간다고 하니 고향에 가 그 조카 데리고 형 산소에도 가보리라. 나는 현재의 삶이 유년 시절의 그림자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고향에서 꾸던 꿈들처럼 지금 내 그림자가 잘 흔들리지 못한다고 해서,부끄럽고 죄스럽다고 해서 고향에 못갈 건 없다. 고향은 그런 못난 나도 푸근하게 안아줄 너른 품이 있으니까. 올해는 고향에 갈 것이다. 쑥도 좀 사고 인삼도 사고 작은 짐 보따리 들고 버스를 타고 덜컹덜컹 고향에 갈 것이다. 가서 늙은 어머니 뵙고 오래된 나무들도 살펴보고 친구들 손목도 잡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