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은 복지와 국방분야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들 분야에 재정을 집중 증액하다보니 SOC(사회간접자본)와 산업ㆍ중소기업 부문 예산은 올 수준에서 제자리걸음 하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내년중 부족한 세수를 7조원 가까운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메우기로 하면서까지 확대 편성한 예산이 SOC와 산업 등 성장분야를 뒷전에 미룬채 복지확충과 자주국방에 대거 투입되는 것이다.


국내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이미 4%대로 떨어졌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재정이 성급한 '분배의 함정'에 빠져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내년에도 1998년 이후 8년째 적자재정이 지속되는데다 2007년까지는 줄곧 적자편성이 불가피한 것으로 예고된 터여서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성장보다 분배에 치중


내년 예산사업 중 가장 많은 돈이 배정된 부문은 사회복지 분야다.


총 37조원의 예산이 배정돼 올해(32조4천억원)보다 14.4% 늘어났다.


12개 주요 분야 가운데 예산 규모도 가장 크다.


국방부문 예산도 20조8천억원으로 올해보다 9.9% 늘어나 통합재정 증가율(6.3%)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성장잠재력과 직결되는 산업·중소기업 분야 예산은 11조2천억원으로 올해(11조4천억원)보다 1.6% 줄어들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급증세를 지속해온 신용보증 공급 등 금융지원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7천억원 감액)한데 따른 것"이라며 "금융부문을 제외하면 재정지원 규모가 6.1% 늘려 편성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최근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들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강력하게 독려하고 있는 것과 모순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주는 SOC에 대한 투자 역시 27조5천억원으로 올해(27조1천억원)에 비해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예산안의 이같은 패턴은 내년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예산처는 최근 발표한 '중장기 국가재정운용 계획'에서 오는 2008년까지 복지예산은 연 평균 9.5%씩 늘려가는 반면 경제사업 예산의 연 평균 증가율은 이보다 크게 낮은 2.9%로 책정했다.


◆우려되는 재정 건전성 악화


정부는 내년 한햇동안 6조8천억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돈만으로는 나라살림을 꾸려가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내년 국가채무는 사상 최대규모인 2백44조2천억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이는 외환위기가 터졌던 지난 97년(60조3천억원)의 4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적자재정이 지속되고 있지만 국내총생산에서 재정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를 밑돌아 사실상 '균형재정'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주요 국가들에 비해 국가채무가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도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당분간 경기침체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앞으로 행정수도 이전이나 자주국방,농어촌개발 등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국책사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국가채무가 예상보다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