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행정기관을 찾은 기업인 중 일부는 "그 것도 권한이라고..."라고 혀를 차곤 한다. 근거도 없는 "잣대"를 들이대며 "안된다"는 공무원 앞에선 아무말도 못하고 뒤돌아 나오면서 내뱉는 소리다. 이에 감사원이 관성적으로 '거부'하는 공무원들에게 '시정(是正)의 칼'을 빼들었다. 한솔제지는 올해 초 경기도 성남시와 하수슬러지 소각장 관리 용역계약을 25억원에 맺은 뒤 근무인력 30명 중 15명은 재위탁 협력업체 직원에서 뽑아 관리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성남시는 법적 근거도 없이 근무인력 모두를 한솔제지 직원으로 채워야 한다며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지난 5월 한솔제지의 신고를 받고 당초 계약서에 '재위탁 불가' 조항이 없으며 재위탁업체가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어 소각장 운영에 지장이 없다는 내용의 '민원처리의견서'를 성남시에 통보했다. 시는 한솔제지의 용역착수 계획을 받아들였다. ㈜송덕목포장은 공장설립 승인이 난 충남 아산시 음봉면 밭 2천2백9평을 제이엠테크로부터 9억원에 사들인 뒤 아산시에 공장설립 명의변경 신청을 냈다. 송덕목포장은 아산시 측으로부터 "당초 시가 잘못 허가를 내준 것인만큼 명의를 바꿔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감사원의 문을 두드렸다. 감사원은 공장설립 승인서를 정당한 것으로 믿고 매매계약을 맺은 송덕목포장에 명의 변경을 허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아산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초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아파트를 신축한 청빛산업개발은 잘못하면 생돈 10억원을 날릴 뻔했다. 관악구청이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으려면 폭 6m의 아파트 진입로를 설치한 뒤 기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유지인 기존 도로를 근처 대지 가격으로 사들여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감사원이 진입로 중 아파트 시행업체가 확장한 부분만 기부하면 되지 국유지까지 비싼 가격에 매입하라는 요구는 부당하다고 지적하자 관악구청은 지난 6월에야 사업승인을 내주었다. 지난 4월 서울시립보라매병원과 1억8천만원짜리 공기조화장치 공급 계약을 맺은 세원기연은 조화장치의 프레임을 시방서에 기재된 '냉간압연강판'보다 내구성이 우수한 '알루미늄합금'으로 바꾸려고 했다가 병원측으로부터 시방서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납품을 거부당했다. 병원측은 대체품이 성능면에서 시방서 제품보다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서야 대체품의 납품을 받아들였다. 이런 사례들은 지난 2월20일부터 지난 10일까지 감사원 '기업불편신고센터'에 접수된 8백40건 중 일부. 이들 민원의 34%(2백86건)는 관련 공무원의 소극적인 업무처리로 발생했다. 감사원은 일선 행정기관에서 민원인의 타당한 주장을 '선례 없음','근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가 다수 드러남에 따라 내달 18일부터 한 달간 특별조사국 직원 30여명을 동원,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등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기업불편사항 개선 실태'에 관한 특별감사를 벌인다고 29일 밝혔다. 감사원은 반복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민원과 불합리한 법령 등에 따라 발생하는 불편사례 등을 확인한 뒤 해당 기관에 법규 및 제도개선을 요구하거나 통보 등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특히 기업 민원을 부당하게 거부 또는 반려하거나 지연처리(부작위처분)한 공무원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기로 했다. 최승욱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