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금융이 실물을 지원하고 리드해야 할 때다" 최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한경밀레니엄 포럼 강연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리스크 관리에만 급급해 "자금중개"라는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금융권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금융부문이 제 기능을 못하는 바람에 투자부진 등 실물부문의 위축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즉,외환위기 이후 은행위주로 금융정책을 펴다보니 2금융권은 고사지경에 몰렸고 이 와중에 대형화된 은행들은 자산건전성 유지에만 매달려 금융부문 전체가 기능마비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심화되는 금융산업 불균형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은행의 대형화와 건전화에 금융정책의 초점을 맞춰왔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가며 은행들의 합병을 유도했고 수익증권 판매,방카슈랑스 등 영업무대도 넓혀줬다. 덕분에 은행들은 국내 금융권에서 '나홀로' 성장을 지속했다. 이는 금융기관 자산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은행 보험 증권 저축은행 등 국내 모든 금융기관의 자산규모는 1997년말 1천4백91조원에서 2004년 6월말 1천9백37조원으로 29.8% 증가했다. 이중 은행의 자산규모는 5백73조원에서 1천1백35조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비은행 금융기관의 자산은 9백18조원에서 8백1조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그 결과 전체 금융산업의 자산에서 차지하는 은행 비중은 1997년말 38.5%에서 지난 6월말 현재 58.6%로 높아졌다. ◆은행 편중 현상의 문제점 금융산업의 은행 편중 현상은 최근 우리 경제에 여러 형태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째는 실물부문으로의 자금공급 부진이다. 전체 금융회사 자산의 60% 가량을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한 은행들이 쥐고 있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국내 은행들은 경기호황 때는 자산을 확대하기 위해 일시에 대출을 늘렸다가 경기불황기에는 한꺼번에 대출을 회수,경기 진폭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LG경제연구원이 경기변동에 따른 은행 대출금의 민감도를 조사한 결과 외환위기 전인 1992∼1996년에는 변동성이 2.2였으나 2002년 이후 올 7월까지는 3.2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산업이 은행에 편중됨으로써 나타나는 또 하나의 부작용은 자본시장의 위축이다. 이는 은행들이 전체 금융자산의 60%를 쥐고 있으면서도 그 운용에 있어 주식,채권 등 유가증권은 외면하고 있어 빚어지는 문제점이다. 실제로 지난 6월말 현재 국내 은행의 자산 중 유가증권 및 상품자산 비중은 16.9%로 미국 상업은행들의 29.1%에 비해 월등히 낮다. ◆금융산업의 균형발전 서둘러야 이런 문제점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의 이한득 부연구위원은 "은행에 금융자산이 집중되면서 경기 사이클에 따라 자금공급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금융산업의 균형발전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특히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뿐만 아니라 직접금융을 매개로 하는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등을 통한 고위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은행과 비은행금융기관간의 균형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덕 조흥투신 상무도 "금융당국은 은행의 이기주의만 탓할 게 아니라 금융산업의 은행 편중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정크본드 시장 등 회사채 시장만 발달돼 있어도 경기 위축기에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지금보다 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