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퇴직금을 털어 서울 여의도에 광고업체를 연 김모씨(41·둔촌동)는 모은행 여의도지점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사무실 기자재 구입 등으로 한푼이 아쉬운 판국에 자본금 5천만원 가운데 1천만원을 2년 만기인 이 은행 정기예금에 가입했다. 법인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담보가 있어야 한다는 법인영업 담당자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당초 은행측은 김씨에게 "매출실적 없인 법인카드를 발급해줄 수 없다"는 주장만 반복하다 해결책으로 1천만원어치의 담보설정을 넌지시 귀띔했다. 접대비 지출 등 비용에 대한 세금 감액을 위해 법인카드가 꼭 필요했던 김씨는 집 근처인 은행에도 문의를 했지만 똑같은 대답만 들었을 뿐 결국 2주일 만에 해당 은행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지난해 카드대란 이후 은행들의 기업 대출 기피 현상이 두드러진 가운데 신설법인을 대상으로 한 신종꺾기인 '법인카드 발행조건부 꺾기(강제성 예·적금 가입)'가 늘고 있다. 카드대란 전만 해도 은행들은 기업 대표이사는 물론 직원용으로도 한 법인에 2∼3장의 법인카드를 발급해 주곤 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신설법인에 있을 수 없는 과거 실적을 요구하다 막판에 담보를 달라는 절충안을 내는 식이다. 김씨는 "정부도 5만원 이상의 접대비는 법인카드로 지출해야만 비용으로 인정한다고 하는 마당에 은행의 이같은 관행은 정부 정책을 거스르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무분별한 고객 확대가 카드 대란의 재앙을 가져왔던 경험에 비춰본다면 은행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정부는 3년 이하 업력을 지닌 창업기업의 경우 현금으로 결제해도 세제혜택을 주는 등 탄력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