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수는 은행의 2배, 순이익은 17분의 1.' 국내 증권사와 은행간 위상차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수치다. 금융감독원과 업계에 따르면 41개 국내 증권사(외국증권사 국내법인 포함)의 올 상반기(1∼6월) 순이익은 2천1백39억원.19개 은행(농협 수협 포함)의 5.9%에 불과했다. 네트워크(지점수) 규모에서도 양측간 차이는 확연하다. 지난 8월말 현재 증권사 지점수는 1천5백33개로 은행의 4분의 1 수준이다. 국민은행 한 곳의 점포수(1천1백35개)가 5대 대형 증권사 지점을 합친 숫자(5백90개)의 2배에 가깝다. 국내 증권업계가 영세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외국 기관의 공세로 가뜩이나 주눅 든 상황에서 은행권이 영토 확장을 선언,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의 최대 수익원인 위탁매매 수수료는 지난 4∼6월 7천2백7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9.34% 격감했다. 국내 대형 인수·합병(M&A)건도 대부분 외국계가 독식,IB(기업금융) 업무에서 적자를 내는 곳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고유 영역으로 여겨져온 분야에까지 은행권의 공략이 거세지고 있다. 은행은 수익증권(펀드) 판매와 장외파생상품 시장(ELD·주가지수연동예금)에 뛰어든 데 이어 자산운용업과 투자자문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증권사 펀드 판매 비중이 지난 1월 81.81%에서 7월에는 75.69%로 줄어든 반면 은행은 18.02%에서 24.13%로 높아진 게 그 예다. 보험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작년 9월 방카슈랑스(은행 등에서의 보험상품 판매)가 도입된 이후 문닫는 보험사 대리점이 속출하는 등 은행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금융업계는 증권·보험업계의 기득권 상실이 자금배분의 왜곡과 기업의 자금조달 약화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를 통한 주식발행 규모도 4조1천8백36억원으로 작년 연간 실적(11조1천1백68억원)의 3분의 1을 겨우 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국 월가는 증권업이 모체인 투자은행(인베스트먼트 뱅크)이 이끌고 있다"며 "국내판 '골드만 삭스'를 육성하지 못하면 외국인의 금융지배 현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