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재앙을 가져온 핵폭탄을 처음 만들어낸 맨해튼 프로젝트는 평화의 상징인 노벨상의 산실이기도 했다. 핵폭탄 이론을 세운 페르미를 비롯 입자가속기를 발명한 로렌스,중수(重水)를 발견한 유리,물리학자 파인만 등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던 핵 개발 주역들은 모두 거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며칠 후 수상자들이 발표될 노벨상과 핵이 오버랩되면서 느끼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연구소가 4년 전 분리한 우라늄 0.2g으로 불거진 '핵개발 의혹' 파문이 수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처음 '과학자들의 단순한 연구활동에 의한 일회성 실험'으로 시작된 것이 22년 전의 플루토늄 0.086g 추출을 둘러싼 의혹으로,이제는 신고되지 않은 우라늄 생산시설과 금속우라늄 1백50kg 생산을 포함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6개항 문제제기와 함께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의 '심각한 우려 표명'으로까지 번졌다. 핵사찰에 그치지 않고 유엔 안보리 회부까지 거론된다. 게다가 북한은 있지도 않은 남한 핵을 물고 늘어지면서 6자회담마저 보이콧하고 나섰다.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핵 만큼 국제사회의 민감한 이슈는 없다. 사실과 무관한 의혹제기마저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이 핵이다. 바로 핵이 갖는 양면적 속성 때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가 "핵은 죽음의 무기지만 전쟁을 끝내고 인류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핵은 후일 에너지문제 해결의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그 양면성을 말해준다. 문제는 핵에 관한 한 확실하게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비확산체제가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핵보유 강대국의 기득권이 국제사회의 질서인 것은 우리로선 어찌해볼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이번 사태는 정말 억울하고 딱한 일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라늄 0.2g과 플루토늄 0.086g을 놓고 벌어진 뻥튀기식 핵개발 논란이 핵의 평화적 연구마저 더 제약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더욱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정부 연구소의 핵물질 추출을 과학자들의 '호기심'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정부는 몰랐다는 것부터,실험을 과거 정권의 일로 치부하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뒤늦은 해명으로 일관한 자세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핵기술 개발을 앞당기려면 핵 연구의 투명성을 완벽하게 확보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우리가 이미 원자력발전 세계 6위의 국가로 올라섰는데도 그에 걸맞은 핵 연구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국제사회로부터 믿음을 얻는데 실패한 탓이다. 일본은 비핵국(非核國)이면서도 우라늄의 농축에서부터 핵물질 생산,관리,재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핵관련 시설과 기술적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핵이 문제되지 않는 것은 핵 연구의 투명성과 순수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고한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이번 일을 빌미로 한 국제사회의 '한국때리기'가 지나칠 정도인 것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여태 잠잠했던 22년 전의 '별것 아닌' 실험이 지금 말썽이 되고,더구나 당장 핵무기로 바꿀 수 있는 플루토늄 수십t을 보유한 일본이 온갖 의혹제기에 앞장서고 있는,그것이 바로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