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불감증 ‥ 이 견 <대한펄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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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견 대한펄프 사장 kee@dhpulp.co.kr >
불감증 하면 주로 의학적 증세와 관련된 것이 연상되지만 더 심각한 게 있다.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못 느끼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기 때문이다.
몇해 전 서울 시내 건널목에서 겪은 일이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무리 중 약간의 취기가 있는 장년 남성 세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얘기에 열중하며 보도 턱에 간신히 걸터 서서 차도에 발을 내려놓았다 올라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침 보행신호로 바뀌었다. 거의 동시에 이들이 차도로 몸을 내려놓는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경사진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던 버스가 세 사람을 덮친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잔영이 오래 동안 가시지 않아 고생했다.
저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테고,딸린 가족들의 황당한 날벼락과 절규가 연상됐다.
안전불감증의 대표적인 사고가 교통사고와 산업재해다. 며칠 전 통계청이 펴낸 '2003년 사망사고원인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25명,추락사고로 10명,산재사고로 8명 도합 40여명이라고 밝혔다.
1년이면 1만5천7백명이란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군대로 치면 1년에 1개 사단이 넘는 병력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전시도 아닌데 말이다.
크게 다쳐 지체부자유로 평생 장애로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3조∼4조원을 웃돈다.
미국에서는 자연재해마저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얼마 전 시속 2백15km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 '아이반'이 미국 남부 멕시코만에 상륙했었다.
아이반의 예상통로인 플로리다 등 4개 주에서는 이미 저지대와 해안 주민 2백만명에게 대피명령을 내렸었다.
이 지역 재해대책본부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시신용 백 1만개를 준비해 놓았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철저히 대비한 결과 희생자를 42명으로 줄였다.
반면에 이어 발생한 허리케인 '진'이 아이티를 강습하면서 약 1천5백명의 희생자를 낳았다는 소식이 안타까운 비교를 하게 한다.
자연재해도 이럴진 데 규칙을 지키고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안전사고는 순전히 자기 스스로의 몫이다. 올 추석연휴 중에도 교통사고와 기타 사고로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불감증 예방 백신은 우리 마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