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점장들 '볼멘소리'.."중기 연체율 줄이고 대출 늘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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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A은행의 K지점장.
그는 요즘 두 가지 상충된 과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나는 갈수록 높아지는 연체율을 어떻게 잡느냐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경기가 좋지 않은데 미군 부대 이전까지 겹치면서 지역경기는 말씀이 아니다.
때문에 연체대출금이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엔 본점에서 '우량 중소기업을 적극 발굴,지원하라'는 또 다른 과제가 떨어졌다.
정부가 은행들에 대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 닦달하자 그 불똥이 일선 지점에 튄 것이다.
K지점장의 입에서는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도 나쁜 마당에 우량 중소기업 찾기가 그리 쉽겠느냐"는 하소연이 절로 나온다.
요즘 시중은행 지점장들은 거의 모두 K지점장처럼 '샌드위치' 신세가 돼 고심하고 있다.
'대출을 늘리고 싶어도 정작 믿고 대출해줄 만한 곳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기업들은 돈이 남아돌아 은행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경기불황 장기화에 대비해 대출금을 갚겠다고 나서는 실정이다.
반면 돈을 쓰겠다는 거래처들은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들 기업은 자격에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업종이 부동산 임대업.
경기침체로 상가건물을 담보로 한 대출의 연체율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임대업은 여신관리업종으로 지정돼 대출심사를 본점차원에서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수관련 중소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B은행의 H지점장은 10년 거래기업인 한 선반업체와 대출금 1억원의 만기연장을 두고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경기위축으로 이 업체는 올 상반기에 적자를 내고 매출도 감소했다.
추가 담보를 확보하지 못하고 덜컥 연장을 해줬다가 부실로 돌아갈 경우 책임은 고스란히 그가 떠안아야 한다.
고민끝에 8천만원만 연장해 줬지만 지금도 못내 씁쓸한 심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지점장들이 많다.
한 은행 지점장은 "지점의 실적평가에서 부실증가는 치명적"이라며 "대출 1백억원을 늘리기보다 부실 1억원을 예방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점장들의 이같은 '샌드위치' 신세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은행들이 '중소기업대출 증대와 자산건전성 확보'라는 이율배반적인 목표를 내걸고 지점들을 다그치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은행들은 4분기 경영전략의 주안점을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 두고 있어 섣불리 대출을 늘리기도 어렵다.
이에 대해 금융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은행들만 닦달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공급채널 확대△부실 대출 발생시 은행 및 해당 실무자에 대한 문책경감△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계한 금융지원제도 개발 등 다양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