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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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耿魯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국내 금융회사 자산에서 은행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말 38.5%에서 2004년 6월 말에는 58.6%로 증가했다고 한다.
금융시스템의 편중현상이 투자 부진과 경제성장 둔화의 한 원인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에 경제학자들은 금융발전이 실물경제의 성장을 주도한다는 사실에 합의를 모으고 있는 실정이며 금융구조가 산업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예금을 기초로 대출을 하는 은행은 차입자의 사업이 아무리 크게 성공해도 원리금만을 회수할 수 있다.
많은 예금주들의 위임을 받아 대출하기 때문에 은행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기 쉬운 사업에 자금을 제공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이 때문에 은행을 통한 자금공급은 성장잠재력이 크지 않더라도 유형자산의 비중과 전통적인 기술의 역할이 중요한 산업에 대해 비교우위를 가진다.
이에 반해 자본시장을 이용한 투자자는 투자기업의 가치가 커질수록 이익을 많이 얻게 된다.
자본시장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가진 투자자들이 기업을 감시하며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위험은 크지만 성장잠재력이 크고 무형자산과 혁신적인 기술의 중요성이 큰 산업에 대한 자금제공에는 자본시장이 비교우위를 가진다.
세계화의 물결 앞에서 한국 경제는 신성장산업의 발전을 통해 도약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사업기회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이익이 보호되고 위험이 적절하게 분담되는 건전한 자본시장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필요한 만큼의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로에 서 있는 우리 사회 앞에 금융혁명을 수행해야 할 과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모방을 통한 공업화 초기 단계를 이미 넘어선 우리 경제에서 새로운 성장을 주도할 산업과 기업을 선정해 계획적으로 육성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시장의 경쟁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들이 살아 꿈틀대도록 하는 도리 밖에는 없다.
최근에는 OECD 국가들 가운데 전체 금융시장에서 자본시장의 비중이 클수록 국가경쟁력이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도 제시된 바 있다.
오히려 자본시장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로서 미국식 모델인가 유럽식 모델인가의 고민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평범한 상식에 기초하더라도 금융시스템의 균형있는 발전은 시급하다.
우리는 지난 10여년간 정부주도의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은행편중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변화는 지지부진하며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은행의 독주와 자본시장의 쇠퇴가 더욱 심화됐다.
왜 그런가? 금융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사회 전반에 충분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총으로 권력을 바꾸는 정치적 혁명이나 트랙터와 기계로 생산방식을 바꾸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는 많지만 금융발전에 성공한 나라는 많지 않다는 사실은 금융발전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금융발전이 정치적 변화를 포함한 사회작동 원리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한 자와 새로 시작하는 자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자금의 확보이다.
금융발전은 자유로운 시장진입을 통한 경쟁의 활성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 성가신 기득권자들에게 금융발전은 환영받지 못한다.
민주화에 성공한 우리 사회가 지속적인 성장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변화와 세계화의 도전을 기회로 이용할 금융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금융혁명이 공정한 시장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일이라는 사실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성장과 분배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원칙도 바로 설 수 있다.
경쟁적인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쟁으로 인한 과실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고통도 분담하는 방향으로 복지를 위한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