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準亨 < 서울대 교수.공법학 > 미국 대통령을 연임한 빌 클린턴은 얼마전 출간된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민권과 반전을 위해 싸울수 있다면 패배가 확실해 보이는 후보들도 주저 않고 지원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반대로 "변혁을 원하는 사람은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정곡을 찌른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곰곰 되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그는 민권과 사회정의,개혁을 지향하면서도 언제나 정치적 성공을 추구했다. 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정책에서도 성공할 수 없고,성공적인 정치와 성공적인 정책이 없으면 사람들은 좋은 정부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 성공적인 정치를 위해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수모를 당하면서도 반대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동참을 유도하는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했다. 알고 보면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결손가정의 아픔을 겪었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함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다. 케네디나 부시 가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세계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의 인생이야기는 다소 자화자찬이나 자기합리화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참신한 교훈들을 담은 흥미로운 기록이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주위의 사람들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생각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자 했으며, 자기보다 나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배우려고 애썼다. 자기 생각을 함께 나누기 위해 전국을 누비면서도 언제나 먼저 다른 사람들의 말과 생각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개방적 협상으로 일관했다. 마치 지도위에 쏟은 잉크가 번지듯 사람들을 끌어모아 그의 사람들로 만들었다. 그는 흡사 정치 역병처럼 승승장구했다. 나라와 정치,더욱이 정치인을 단순 비교해 우열을 따지는건 그리 현명한 일은 못된다. 그러나 몇가지 후지혜를 얻을수 있지는 않을까.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 닿는 건 정치성공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화두는 거의 모두가 파열음으로 가득하다. 과거사 진상규명이 그렇고 국가보안법 폐지나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그렇다. 논란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이 모두가 이념적으론 올바른 정책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그동안 이들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정치에 성공하고 있는가. 탄핵이라는 전무후무한 시련을 극복하고 얻은 교훈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경제정책은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정략적 음해를 비난하며 태연을 가장했었지만,이제는 노쇠한 얼굴가죽에 앳된 당혹의 표정을 지으며 잔뜩 혼란에 빠진 것 같다. 그러니 진보적 인사의 입에서 정권주도세력의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역량 결여를 지적하는 쓴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너무도 몰라준다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지만,국정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것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불문하고 널리 공유된 인식이다. 신행정수도 건설문제만 해도 그렇다. 야당이 충청지역 의원들의 압력에 굴복,법률통과에 합의해 주었고 그 후에도 정치적으로 모호하기 짝이 없는 기회주의적 태도로 우왕좌왕했기에 느긋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국회 스스로가 제정한 법률을 자기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대통령이 이를 번복하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결과가 돼 법치에 반한다는 명분도 있었기에 자신감을 갖고 정도를 걷겠다 했을 것이다. 그 보다 더 효과적인 다목적 정치도구가 또 있었을까. 충분히 최대한 그 효과를 즐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성공적인 정치였던가. 남은 시간 단기적 경기부양에 몰두하며 거시적으로는 다음 정권에 폭탄을 돌리는데 쓰지 말고,진정 공동체 이익을 위한 정책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 정치를 위해서는 국민을 향해,아니 그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고서라도 호소하여 설득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야당이 비타협 정략으로 돌아앉고,원로와 지식인의 범주에 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목불인견의 상황에서도 참고 또 참고 올곧게 정치를 성공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