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택 < 중앙대 교수ㆍ경제학 > 최근 실물경기가 양극화되면서 우리 경제가 장기침체의 악순환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 저축이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로 전환되면 국내 자본투입량이 감소,실업증가로 연결돼 다시 투자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들은 수출 증가로 벌어들인 자금들이 투자소요액보다 많아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자금공급자로 전환됐다. 반면 내수 감소로 신용위험이 증가한 중견기업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고 회사채시장도 성숙되지 못해 자금조달이 어려워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또 금융기관과 기관투자가들의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화돼 최근 우리나라의 국공채 이자율 수준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낮은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적다.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인하해도 투자가 늘기보다 국공채 수익률만 인하돼 국내자금의 해외유출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선 미국과 일본의 과거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제조업체가 경쟁력을 상실해 구조조정이 필요했던 1970년대 말,미국은 기관투자가의 투자제약을 완화해 국공채 위주로 투자하던 보수적 투자패턴을 주식,고수익채권,벤처투자,사모증권 등 여러 자산에 분산 투자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자금이 부패고리에 연루되지 않고 자본시장을 통해 고수익채권이나 신생기업의 위험자본으로 사용돼 지식집약적인 산업을 육성할 수 있었다. 반면 1990년대 일본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확대해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고 은행을 통해 자금공급을 늘렸다. 그러나 은행들이 신성장 동력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 보다 건설업,부동산업,유통업 등 내수산업을 지원했다. 그 결과 기존산업 구조조정이나 신산업 육성에 실패해 장기불황에 빠졌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도 미국처럼 BBB등급 이하 회사채나 사모증권에 투자하도록 기관투자가의 투자제약을 완화해 자본시장을 통해 위험자본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가 투자제약 때문에 BBB등급 회사채에 투자를 하지않아 위험 자본이 공급되지 못하고 콜금리 인하가 BBB등급 회사들의 자금조달비용 인하로 연결되지 않는다. 중기적으로 보면 BBB등급 이하인 중견기업들이 필요한 설비투자 자금을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할 수 있도록 회사채 시장을 육성,은행위주의 금융구조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첫째,독일의 PROMISE 프로그램처럼 중견 또는 중소기업 채권을 모아 자산유동화 채권을 발행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중소기업이 시설자금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발행하는 회사채 만기를 3년에서 5년 이상으로 장기화해야 한다. 이를위해 현재 3년 미만으로 운영되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만기를 5년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셋째,장기회사채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선진국에서 활용되는 지급보증전문회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넷째,현재 증권거래법에서 금지돼 있는 신용파생상품 거래를 활성화해 은행들의 신용위험 관리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다섯째,투자자에게 BBB등급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나 투자자가 3개 신용평가기관의 등급조정이 적합한지를 평가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하려면 통상적 재정정책과 달리 자본시장을 통해 위험자본을 공급하는 재정확대정책이 효율적일 수 있다. 즉 재정이 국채를 발행해 부동화된 자금을 흡수,자본시장을 통해 중견 또는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다만 이 경우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자금을 배분하고 사후감독을 철저히 해 과거 유사한 정책에서 발생했던 부패문제가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일본처럼 내수기업을 지원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므로 신성장 동력산업을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 /한국채권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