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경영권 비상] 순익15조 회사, 2조면 외국에 넘어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삼성전자의 경영권 방어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외국인이 현 주가 기준으로 2조원만 들이면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순이익이 15조원으로 예상될 정도로 대한민국 간판기업으로 자리잡은 회사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사정권'에 들어간 것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상당히 시리어스(serious)한 국면"이라고 토로했다.
삼성이 위기감을 느끼게 된 배경에는 두가지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현행 수준의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외국인의 경영간섭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삼성이 현실적으로 지분 대결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할 방법은 없다.
의결권 있는 내부 지분이 지나치게 낮은 데다 높은 주가로 인해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의 특수관계인이 개인 지분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계열사들도 상호 출자규제와 자금 동원력 등의 문제로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여건이다.
◆백기사가 없다
삼성전자는 취약한 내부지분을 늘리기 위해 연말까지 자사주 4백만주를 사들이기로 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내부지분은 종전 22.8%에서 25.2%로 늘어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9.3%에 달해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16.1%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 4일 기준으로 외국인 지분은 57.67%.여기에다 1천3백98만주(9.5%,2004년말 예상)에 달하는 자사주를 제외하고 지분을 뽑아보면 63.8%에 달한다.
2.9%의 지분만 추가로 확보하면 이사 해임 등이 가능한 특별결의를 발동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2조원 안팎의 자금으로 현재 이사진을 모두 물러나게 하고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겨 버티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7조원 수준의 자금을 동원해 삼성전자의 자사주를 사줄 곳은 거의 없다.
자금력이 있는 은행들도 거의 외국계 수중에 넘어가 있어 검토대상으로 거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상호출자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계열사들이 매입하는 방안은 결정적으로 금융사 의결권 제한 규정에 가로막힌다.
자사주가 계열사에 넘어가 의결권이 부활되는 순간 15%룰에 의해 금융사 의결권이 자동 정지되는 것.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금융사의 지분을 다른 곳에 넘기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삼성의 지배구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데다 자사주의 경우처럼 지분을 맡아줄 투자자를 물색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인철 박사는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해외 투기자본에 결정적인 공격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에 백기사(우호세력)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한마디로 사면초가"라고 말했다.
◆영원한 우호세력은 없다
전문가들은 당장 삼성전자가 공격당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 내부의 생각은 다르다.
인텔을 능가하는 폭발적인 수익력 자체가 M&A의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내부유보율이 높고 현금흐름이 탁월한 기업이야말로 적대적 M&A를 시도할 만한 최적의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대다수 해외 투자가들은 삼성전자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믿고 있다.
또 실적에 비해 배당도 적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몇 년 전부터 보유주식의 의결권 지원을 전제로 경영 간섭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분 9%를 갖고 있는 미국 캐피털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뉴욕으로 본사를 옮기면 주가가 세 배는 오를 것"이라며 본사 이전을 강력하게 촉구한 데 이어 올해는 자사의 이사회에 윤종용 부회장이나 최도석 사장이 참석해줄 것을 요구했다.
삼성 관계자는 "자신들의 이사회에 투자사의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참석토록 요구하는 것은 경영간섭을 상시화·구조화하겠다는 의도"라며 "일단 거절했지만 내년에는 요구의 강도가 더 높아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외국인 투자가는 삼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회공헌기금을 낸다는 데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비록 지금은 이들 투자가가 우호세력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상황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 삼성의 최대 걱정거리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국제자본은 기본적으로 광포한 성향을 띠고 있다"며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